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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나의 버킷 리스트

by 동쪽구름 2020. 6. 22.

버킷 리스트(bucket list) 란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의 마지막 소원을 말한다그 어원은 중세 혹은 미국 서부 개척기 시대사람의 목에 밧줄을 걸어 서까래에 매단 후 발을 받치고 있던 양동이를 (bucket) 차 버리면 목을 조여 죽게 된다는 “kick the bucket” 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기록한 목록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버킷 리스트란 말이 단순히 유행어의 수준을 넘어 삶을 재정비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잡지에 실린 남들이 적어 놓은 버킷 리스트를 보다 잠시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이루고 싶은 일들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이루어진 듯싶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득하던 사춘기, 소아마비 장애인이었던 나는 남들보다 훨씬 힘든 시절을 보냈다그때 나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했었다직장을 얻고 월급을 받아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 무렵 나는 책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는데 부모님에게서 받은 용돈으로는 읽고 싶은 책을 다 살 수가 없었다. 어른이 되면 책을 실컷 사서 읽고 싶었다가끔씩 얻어먹는 자장면과 탕수육을 물리도록 사 먹는 일도 내가 이루고 싶은 일 중의 하나였다

 

미국에 와서 30년 동안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왔다이제 보고 싶은 책도 마음대로 사서 읽을 수 있고, 먹고 싶으면 자장면과 탕수육도 사 먹을 수 있다그러나 이건 내가 목록을 만들고 이를 이루고자 애를 써서 얻은 것은 아니고, 그냥 살다 보니 얻어진 것들이다

 

평생을 하루라고 보면 나는 이제 서머타임이 끝난 초겨울, 어느덧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오후 5시경이 아닌가 싶다더 늦기 전에 남은 생에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모빌홈이나 개조한 밴 차량을 구입해 아내와 긴 여행을 떠나고 싶다. 고속도로가 아닌 1930년대 만든 국도를 따라 미국을 횡단할 것이다블로그를 만들어, 여행을 하며 보고 느낀 것을 사진에 담고 글로 적어 올려놓을 작정이다아주 오래전부터 꾸어온 꿈이다

 

작은 찻집을 열고 싶다. 동그랗고 작은 원형 탁자가 서너 개 놓인 10여 명쯤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찻집을 열어 갓 볶은 커피콩을 갈아 커피를 끓이고 아내가 구워낸 빵을 내놓을 것이다그녀의 기분에 따라 빵 메뉴는 매일 달라질 수도 있다

 

찻집에서는 늘 7080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내 나이 또래의 손님들이 한가로이 책을 읽거나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듣고 있을 것이다길가로 난 창을 제외하고 벽에는 아내가 그린 그림들을 걸어 놓을 것이다커피콩 값이 오르고 밀가루 값이 올라도 가게에서 파는 커피나 빵 값은 올리지 않을 것이다가끔 아내의 그림이 팔리면 그 돈으로 모자라는 매상을 메울 셈이다

 

이웃에 딱 두 집 친구를 두고 살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만든 날이면 함께 밥도 먹고 저녁이면 차나 과일을 나누며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지낼 것이다.  

 

끝으로 뒤에 남을 아내와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생을 마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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