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책방에서 책을 둘러보다가 하루키의 책을 발견하면 무조건 바구니에 담는다. 나는 그의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나 잡문도 좋아한다. 하루키에게는 일상이 모두 글의 소재가 되는 모양이다. 무엇 하나 그냥 버리는 법이 없다. ‘무라카미 T’도 그런 부류의 책이다.

그가 LP판을 좋아하며 기회가 되면 여행지에서 중고 레코드 가게에 들러 LP판을 사서 모은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티셔츠도 모은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작정을 하고 티셔츠를 모은 것은 아니고, 이곳저곳에서 홍보용 티셔츠를 받고, 마라톤 대회에 나가면 기념 티셔츠를 받고, 여행을 가면 갈아입을 옷으로 그 지역 티셔츠를 사고, 그러다 보니 서랍에 못다 넣고 상자에 담아 쌓아 놓게 되었다고 한다.
레코드 수집에 대한 인터뷰를 하다가 무심코 “티셔츠 모아 놓은 것도 있어요”라고 했더니, 편집자가 그걸 연재해 보자고 했다. 그 후, 잡지 ‘뽀빠이’에 일 년 반 동안 티셔츠 사진과 글을 연재했고, 모아서 낸 책이 ‘무라카미 T’다.
그가 모은 티셔츠는 대충 200여 벌이 넘는다. 그는 결코 비싼 티셔츠를 사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굳윌이나 구세군, 재활용 중고매장에서 쇼핑을 한다. 마음에 드는 것은 즐겨 입기도 하지만, 눈에 띄는 디자인은 입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수집한다는 것은 함께 이야기도 수집하는 것이다. 그가 가장 아끼는 티셔츠는 ‘TONY TAKITANI’ 티셔츠라고 한다. 마우이 섬 시골 마을의 자선매장에서 발견하여 1달러 주고 산 것이다. ‘토니 타키타니’는 누구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소설을 썼고, 영화화까지 됐다.

그 후, 토니 타키타니에서 연락이 왔다. 그는 하와이 주 하원의원 민주당 후보였으며, 티셔츠는 선거용으로 만든 것이었다.
책에는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 제임스 딘이 입었던 하얀 티셔츠 이야기가 나온다. (170 페이지) 이건 티셔츠는 아니고 크루넥 언더셔츠다. 한쪽 팔 소매를 접어 그 사이에 담뱃갑을 끼워 넣는 것이 유행했었다.
책에 실린 티셔츠 사진은 그의 글만큼이나 재미있다.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윈터 씨의 해빙기 (4) | 2025.02.20 |
---|---|
원더풀 라이프 (2) | 2025.01.22 |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 (8) | 2024.10.23 |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6) | 2024.08.29 |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3) | 2024.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