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의 분석

화제작이었던 영화 ‘추락의 분석’(Anatomy of a Fall)을 Hulu에서 스트리밍으로 보았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화를 보게 되면 대개는 중간에 한, 두 번 중단하게 된다. 다음날 또는 며칠 후에 마저 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미루다가 흥미를 잃어 다시 보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이 영화는 상영시간이 2시간 35분이나 되는 짧지 않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중단 없이 한 번에 끝을 냈다. 그만큼 흡입력이 있는 영화다. 프랑스 영화라 대사의 절반 정도는 프랑스말이 나온다. 

 

프랑스 알프스의 외딴곳의 아직도 공사 중인 3층짜리 집에 독일 태생의 작가 ‘산드라’(산드라 픨러)가 남편 ‘사무엘,’ 아들 ‘다니엘’과 살고 있다. 그녀는 여러 권의 책을 발표한 작가지만 생활에는 여유가 없어 보인다. 돈을 벌기 위해 번역 일을 한다. 사무엘은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기 위해 집을 고치고 있다. 

 

어느 날 애견 ‘스눕’과 산책에서 돌아오던 다니엘이 눈 위에 피를 흘리고 누워있는 사무엘을 발견한다. 산드라는 남편이 숨을 쉬지 않는다고 경찰에 신고하고, 출동한 경찰은 그의 죽음이 사고사나 자살보다는 타살의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유력한 용의자는 아내인 산드라다. 그녀는 남편의 추락사가 일어났을 때 자신은 자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다. 영화는 산드라가 변호사와 나누는 대화, 그리고 법정에서 벌어지는 진술을 통해 전개된다. 

 

11살 아들 다니엘이 사무엘의 부주의로 사고를 당해 실명을 한 후 두 사람은 원만치 않는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과거 산드라가 다른 여성과 바람을 핀 것을 두고 부부가 심하게 다투기도 했다. 

 

사무엘은 산드라처럼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아들의 사고가 자신의 탓이라는 죄책감에 그 꿈을 포기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교사 일을 하고 아들을 홈스쿨링한다. 그리고 아내가 글 쓰는 것을 뒷바라지했다. 20-30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를 쓰지만 소설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산드라가 그 소재를 가지고 장편소설을 발표한다. 사무엘은 그녀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빼앗아 갔다고 주장하고, 그녀는 남편이 동의했다고 항변한다. 두 사람은 와인잔을 내던지고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싸운다. 이 모든 것이 산드라 몰래 사무엘이 녹음해 둔 USB를 통해 밝혀진다. 

 

검사는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을 인용하며 그녀를 몰아가지만, 그녀는 모든 것이 과장된 것이라고 말한다. 싸우다 보면 감정에 휩싸여 진실이 왜곡되기도 하고 과장되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한다. 

 

이 부분에게 크게 공감했다. 난 아내와 물리적으로 싸우거나 심하게 다툰 기억은 없다.(아내에게 물으면 달리 대답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을 과장되게 부풀리거나 마음대로 왜곡해서 다툰 적은 있다. 

 

상황은 그녀에게 불리하게 진행된다. 모든 진술이 끝난 금요일 오후, 판사는 월요일에 다니엘의 진술이 있을 것이라고 발표한다. 법원에서는 재판기간 동안 그녀가 아들에게 영향을 행사할까 봐 집으로 법정보호자를 보내어 다니엘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 주말, 다니엘은 혼자 있고 싶다며 산드라에게 집을 떠나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다니엘은 법정에서 사무엘의 죽음을 자살로 확정 짓는 산드라에게 유리한 진술을 한다. 

이쯤에서 대부분의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그날의 진실을 보여주는데, 이 영화는 그러지 않는다. 그녀는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지만, 관객은 진실을 알 수없다. 

 

영화 제목의 일부인 'Fall'은 물건이나 사람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추락의 의미도 있지만, 물가나 주식의 하락, 단체나 국가 또는 개인의 몰락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로서도 가장으로서도 몰락의 길에 들어선 다니엘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며 몰락의 책임을 산드라에게 물어 복수를 하기 위해 녹음 파일을 남겨 놓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바람둥이 양성애자며 남의 작품을 표절하는 작가로 몰아가는 남편을 산드라가 살해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니엘의 법정 진술은 진실인가? 혹시 그가 죽은 아빠 대신 엄마를 선택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