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전, 알라딘 중고책방에서는 $50 이상 책을 사고 8주 걸리는 배편을 이용하면 배송료가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후, 배편은 중단되었고 DHL 항공편만 이용이 가능했다. 다소 비싼 배송료가 붙기는 했지만, 대신 주문 후 4-5일 만에 받아 볼 수 있는 편리함이 생겼다. 이때도 $50 이상 책을 사면 배송료가 할인되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책을 구입하며 보니 배송료 없는 배편이 다시 생겨났다. 마침내 팬데믹 이전 세상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배송료를 절약하려면 $50 이상 소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대개는 한 번에 5-6권 정도를 사게 된다. 책을 받아 들면 몇 권은 곧 읽게 되는데, 1-2권은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책장에 올려놓고 1년 이상 읽지 않은 책들도 있다. 작가 성석제의 소설집 ‘이 인간이 정말’도 1년 이상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책에는 8편의 소설이 들어 있다.
첫 작품 ‘론도’는 단순 접촉사고에서 시작된 차와 보험에 얽힌 이야기다. 가해자가 되었다가 피해자가 되며 화자의 언행이 변하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남방’에서는 화자 일행이 우연히 ‘박’이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흥미로우면서도 약간은 불편해진 그들의 라오스 여행기다. 외국에서는 한국 사람을 조심하라고 하지 않던가.
‘찬미’는 어린 시절,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이 예뻤던, 그 후 좋지 않은 소문이 무성했던 첫사랑에게서, 이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만나자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그녀를 만나러 가면서 화자가 지난날을 떠올리는 이야기다.
표제작 ‘이 인간이 정말’은 어머니의 주선으로 맞선 자리에 나온 백수가 아가씨는 전혀 배려하지 않고, 쓰잘데 없는 잡다하고 불편한 정보를 쉴 새 없이 늘어놓아 여자를 질리게 만드는 내용이다.
‘유희’는 조선시대 복수군의 장수면서 단 한 번도 왜군과 싸우는 일이 없었던 기원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무참히 죽음을 당하는 유희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외투’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늘 입고 다녔던 외투를 물려 입은 화자가 등장한다. 이 글을 읽으며 문득 내게는 아버지가 쓰시던 물건이 단 한 개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은 일상을 일기처럼 적어 놓은 수첩을 비롯해 이런저런 것이 있는데, 아버지가 쓰시던 물건은 없다. 지나고 나니 아쉬움이 남는다.
‘홀린 영혼’에는 허풍과 거짓으로 일관된 삶을 사는 ‘이주선’이라는 친구가 등장한다. ‘찬미’와 함께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이다.
‘해설자’는 시골 외진 곳에 자리한 열녀각에서 문화재 해설을 하는 김문일이라는 인간이 등장한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소 과장되기는 했지만 살며 한 번쯤은 들어 본, 또는 겪어 본 적이 있는 인간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이야기에 친근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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