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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산티아고 순례 이야기

by 동쪽구름 2024. 4. 20.

산티아고 순례를 버킷 리스트에 담아 놓은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한때 아내에게 이 길을 걷게 하고, 나는 차를 타고 이동하여 다음 마을에서 만나는 식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동안 산티아고 순례에 대한 이런저런 책을 보며 내린 결론은 "실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요즘은 오프로드 전동 휠체어도 많아 길을 가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례자의 숙소인 알베르게나 오래된 마을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을 리 없다. 결국 남들이 걸은 이야기를 읽고 대리 만족을 하기로 했다. 

 

이 책을 쓴 ‘이해솔’은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이 책을 썼다. 그는 대학 졸업 직전 장래를 놓고 아버지와 갈등하던 무렵 산티아고 길을 걸었고, 두 번째는 자신의 뜻대로 대학원을 마치고 국제 NGO에서 2년 직장 생활을 하다 자신 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껴 걷게 되었다. 

 

사람들은 왜 산티아고 길을 걸으려 할까? 누군가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누군가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또는 새로운 경험을 위해 걷는다고 한다. 책을 쓴 저자와 책에 등장하는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익숙한 환경, 나를 잘 아는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 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모든 것을 꺼내 놓고 다른 이와 함께 들여다보며 의견을 나누다 보면 문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건 바둑에서 복기를 하거나, 시계를 분해해서 고장 난 부품을 찾는 것과 같다. 

 

나의 지난날들을 알고 있고, 미래를 함께 할 사람들에게 나의 전부를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낯선 사람과의 짧은 만남에서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깊은 이야기를 쉽게 꺼내곤 한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병원에 가서 검사 준비를 도와주는 간호사에게 그 무렵 나를 힘들게 하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녀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옆에 앉은 승객과, 요즘은 Access 밴 차를 타고 학교 가는 길에 운전기사와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낯선 사람은 나의 과거를 모름으로 편견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으므로 섣부른 충고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산티아고 순례를 생각하고 있다면, 가고는 싶지만 갈 수 없다면, 이 책 읽기를 권한다. 한 번에 다 읽지 말고 하루에 몇 꼭지 씩 7-10일쯤 걸려 읽기를 권한다. 순례를 다녀온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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