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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울분

by 동쪽구름 2023. 1. 12.

‘필립 로스’의 소설 ‘울분’은 1950년대 초 미국을 배경으로 한 유대 청년 ‘마커스 메스너’의 이야기다. 뉴어크 유대인 가정 출신인 마커스는 학구적이고 모범적인 청년이다. 코셔 정육점을 운영하는 그의 아버지는 마커스가 뉴어크의 로버트 트리트 대학에 입학한 뒤 아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한다.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마커스는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오하이오의 와인스버그 대학으로 편입해서 가 버린다. 변호사가 꿈인 그는 학비를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에 열중한다. 

 

1950년대, 미국은 한국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많은 젊은이들이 먼 땅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마커스의 사촌 두 명은 2차 대전에 참전했다 모두 전사했다. 그 역시 학교를 마친 후에는 군에 가야 할 판이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병보다는 장교가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ROTC 훈련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집을 떠나 바뀐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새벽까지 음악을 들으며 수면을 방해하는 룸메이트, 매력적인 외모지만 알코올중독과 자살 시도라는 숨겨진 과거를 가진 여자친구 ‘올리비아,’ 보수적인 학교규칙과 학생과장 사이에서 그는 불안과 혼란의 나날을 보낸다. 

 

룸메이트와 갈등으로 기숙가 방을 두 번이나 옮기게 된다. 맹장 수술한 그를 병원으로 찾아온 어머니는 한눈에 올리비아의 행적을 알아보고 그녀와 헤어질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그는 다시 그녀를 만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그는 학생과장을 통해 그녀가 신경쇠약이 악화되어 학교를 떠나 병원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학생과장은 그가 그녀를 임신시킨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학교가 요구하는 것 중의 하나는 주일 예배에 마흔 번 참석하는 것이다. 돈을 주면 대신 예배에 참석해서 출석부에 이름을 올려 준다는 것을 알게 된 마커스는 이를 이용하다가 발각된다. 학교에 반성문을 제출하고 예배에 충실하게 나갔더라면, 마커스는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학교 당국에 대들고 반항하다 결국 퇴학 처분을 받는다. 졸지에 징집대상이 되어버린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중공군의 공격에 전사한다. 

 

1950년대는 작가 필립 로스가 20대를 보내던 시절이다. 캠퍼스의 분위기나 학생들 간에 벌어지는 일들은 다분히 자전적 요소가 있어 보인다. 

 

작가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든 선택, 우연이 벌어지는 사건들이 얼마나 끔찍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역사가 가져다주는 개인 또는 한 가정의 비극을 잘 그리고 있다. 

 

아버지가 아들의 삶에 지나친 간섭을 하지 않았더라면, 마커스가 참고 로버트 트리트 대학에 계속 다녔더라면, 아름다운 여학생 올리비아를 만나지 않았다면, 돈을 받고 예배에 대신 참석하는 아르바이트 생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반성문을 쓰고 남은 학기 동안 열심히 예배에 참석했더라면, 마커스는 낯선 땅 한국의 이름 없는 고지에서 죽음을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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