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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실천하는 사랑

by 동쪽구름 2020. 7. 14.

죽은 몸으로도 여러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그들의 장기를 기증하여 죽어가는 이들을 살려냈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된다.

 

간의 일부를 떼어내거나 신장을 떼어내어 기증하는 일은 죽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직장 동료 중에는 수년 전 투석을 하던 아버지에게 신장을 떼어 준 이가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에게서 신장을 이식받아 건강을 되찾고 다시 일도 하며 잘 지내고 있다.

 

가족이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하려고 해도 맞지가 않아 이식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런 때 생면부지의 사람에게서 신장을 기증받고, 그에게 신장을 떼어 주려던 가족은 대신 다른 사람에게 장기를 주고, 이를 받은 이의 가족이나 친구 중에 누군가가 또 신장을 기증하는 사다리식 장기 기증이 퍼져 나가고 있다고 한다.

 

일찍이 공자는 “인(仁)이란 내가 이룬 것은 남도 함께 이루도록 해 주고, 내가 아는 것은 남에게도 알려줘 함께 하는 것이다. 내 주변에서 ‘함께 하기’를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게 ‘인’을 이루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인(仁)이란 곧 주변 사람을 아끼는 것을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사랑한다” 는 말을 너무 흔하고 가볍게 쓴다. 연예인들은 무대에 서서 관객들 또는 시청자를 향하여 사랑을 남발하고 정치인들은 단상에 올라 또는 시장판을 돌며 사랑을 남발한다.

 

수년 전의 일이다. 새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거실과 부엌에 있는 전화선이 먹통인 것을 발견했다. 이웃에 사는 지인이 와서 보더니 주말에 보조 일꾼까지 데리고 와서 집 아래 공간으로 기어들어가 방마다 전화선과 케이블 선을 깔끔하게 깔아 주었다.

 

지난여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밤 10시쯤 되었을까 욕실의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부엌에 나와보니 냉장고의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내가 마당에 나가 두꺼비 집을 열고 퓨즈를 다시 연결했는데도 잠시 후에 다시 전기가 나갔다. 이웃의 그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한국에서 손님이 와서 바쁘다면서도 그는 두말 않고 달려와 고쳐주고 갔다.

 

말을 하지 않아도 나는 그가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 공자가 말한 인(仁)도 바로 이런 것을 일컫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나도 언젠가 그에게 도움을 주어 신세 진 것을 갚고 싶다. 하지만 꼭 그에게 갚을 필요는 없다. 누군가 내가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 된다. 이렇게 사다리식으로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에게도 필요한 도움이 전달될 테니까.

 

요즘 내가 나가는 성당에는 신혼부부가 있는데,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이 넘친다. 늘 팔짱을 끼고 다니고 끊임없이 귓속말을 속삭인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안아주고 뽀뽀도 해주는 젊은 엄마 아빠들도 여럿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다. 긴 세월 함께 산 배우자가 내게 상처를 주고 성장한 자녀가 나를 섭섭하게 하더라도 우리는 계속 그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사랑하던 사람이 미워지기도 하고 아예 처음부터 싫은 사람도 생겨난다. 그러나 그들과도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인(仁)의 정신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가 남을 사랑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사랑한다. 말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실천하는 사랑이 필요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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