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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밤의 여행자들

by 동쪽구름 2022. 9. 13.

나는 작가 ‘윤고은’의 소설 ‘밤의 여행자들’을 영어판 ‘The Disaster Tourist’로 먼저 읽었다. 영어 번역본은 읽기가 쉽지 않았으며, 읽어도 내용이 잘 파악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책을 다 읽고도 브런치에 리뷰를 남기지 않았겠는가.

 

이번에 한국어판으로 다시 읽으며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책은 흥미로웠고, 쉽게 읽혔다. 번역은 재창조라는 말이 새삼 피부에 와닿는다. 본문에 충실한 직역이 좋을 것 같지만, 문화와 정서를 감안하지 않는 직역은 때로는 오해를 낳기도 한다. 직역이 안 되는 표현도 있다. 작품을 해치지 않으며 다른 언어로 다시 쓰는 작업이 번역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 영어로 번역된 한국 소설을 더러 읽었다. 한강의 책과  김영하의 소설들을 영어로 읽었다. 그들의 책에서는 부자연스러움이나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이야기로 돌아와서, ‘고요나 재난과 여행을 결합한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 ‘정글' 프로그래머다. 어느  그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상사인 ‘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성추행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김은 회사에서 입지가 위태로워진 사람들만을 골라 성추행을 한다는 점이다.

 

계속되는 그의 성추행을 참을 수 없게 된 그녀는 사표를 제출한다. 그러자 김은 사표를 수리하는 대신 한 달간의 휴가를 제안한다. 퇴출 후보인 여행지를 골라 소비자의 시각으로 여행을 다녀온 후 보고서를 제출하면 출장으로 처리를 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녀는 사막의 싱크홀 ‘무이’로 5박 6일 여행을 떠난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날, 기차 안에서 잠시 화장실에 갔던 그녀는 기차의 앞뒤가 분리되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헤어지며 일행으로부터 낙오가 된다. 짐과 일행을 모두 잃어버린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여행 동안 묵었던 리조트 ‘벨 에포크’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함께 여행했던 작가 '황준모'를 만나게 된다. 요나가 정글의 직원임을 알게 된 매니저는 그녀에게 퇴출 위기에 놓인 무이를 살리기 위한 인공 재난 시나리오에 동참해 줄 것을 제안한다. 이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가 황준모였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시나리오에 악어로 표기되며, 이름도 없이 남자 12, 남자 16, 또는 여자 7, 여자 10 등으로 불린다. 계획은 차근차근 준비되고 D데이가 다가온다. 그리고 요나는 "당신을 악어 75로 고용합니다. 대사는 없습니다. 고용 수당 300달러는 사건 발생과 동시에 당신의 계좌로 입금됩니다."라는 편지를 받는다. 시나리오에 의하면, 악어 70부터 450까지는 재난 발생과 함께 모두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무이의 주민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D데이 새벽, 무이에는 진짜 재난이 찾아오고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작가 윤고은의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무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며, 주어진 역할 외에는 아는 것이 없고 아무런 힘도 없는 주민들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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