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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방금 떠나온 세계

by 동쪽구름 2022. 6. 24.

SF 소설의 매력은 시공을 초월해서 제한 없이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본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과거 한때 사람들이 황당하다고 생각했던 SF 소설의 많은 소재들은 현실이 되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책을 보며 꿈꾸는 상상의 세계도 이미 다른 차원에서는 존재하고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SF 소설을 읽으며 정말 그런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SF 소설은 주로 미래를 이야기한다. 과거가 등장하더라도 미래의 기술로 과거를 방문한다. 시차 속의 다른 세계는 밤하늘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어떤 별빛은 백 년, 천년, 만년 또는 그보다 더 오래된 빛들이다. 이미 그곳에서는 사라진 별이지만, 우리들 눈에는 살아있는 모습으로 반짝이고 있다. 

 

나는 청소년 시절 SF 소설을 좋아했었다. 번역된 외국의 SF 소설이 그럴듯한 이야기였다면, 한국 작가들의 SF소설은 다소 부족하게 느껴졌다. 내용도 그렇고 이야기의 흐름도 설득력이 부족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작가 ‘김초엽’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소재는 설득력이 있다. 등장하는 용어나 설정 등이 나름 리서치를 해서 만든 결과물이라는 느낌을 준다. SF 소설도 결국은 사람들(우주인이나 기타 생명체이긴 하지만) 간의 이야기다. 그녀는 SF라는 장르를 이용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최후의 라이오니’ - 단독 임무를 부여받아 행성 3420ED를 탐사하게 된 ‘나’와 살아남은 기계들의 리더인 ‘셀’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다. 

 

인공지능(AI)으로 둘러싸인 세상이 되었다. 로봇의 형태로 존재하는 AI 도 있지만 대부분의 AI는 손톱만 한 칩의 형태로 온갖 것에 들어 있다. 과연 인공지능이 감성을 지니게 되면 그들은 어떤 세상을 만들게 될까.

 

‘마리의 춤’ - 시지각 이상증을 겪는 모그들이 등장한다. 지금의 우리 기준으로는 시각장애인들이다. 모그인 ‘마리’가 화자인 내게서 춤을 배우겠다고 한다. 나는 모그들은 플루이드를 통해 서로의 움직임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리가 춤을 배우고자 했던 이유가 밝혀진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우리들의 거부감과 편견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 실린 여러 편의 작품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로라’ - 신체에 없는 부분을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로라는 자신에게 없는 세 번째 팔을 이식하고 싶어 한다. 

 

사랑하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될까?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등을 생각해 보게 된다. 

 

‘숨 그림자’ – 지구를 떠나 다른 혹성에 거주하게 된 인간은 혹독한 환경에 지하로 숨어들고 점차 발성기관을 잃어 호흡으로 대화를 하게 된다. 부서진 우주선과 함께 얼음 밑에서 발견된 원형 인류 ‘조안’ 이 오랜 냉동상태에서 깨어난다. 호흡을 알아듣지 못하는 조안과 말을 들을 수 없는 숨 그림자 사람 ‘단희’가 나온다. 

 

난 이 작품을 읽으며 미국에 사는 한인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삶을 생각했다. 외모가 다르고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은 큰 장벽이다.

 

‘인지 공간’ - 인지 공간 관리자인 '나'와 작고 약한 몸으로 태어나 그곳에 들어갈 수 없는 ‘이브’의 우정과 갈등을 그린 이야기다. 

 

나는 여기서 말하는 인지 공간의 지식이 현대사회의 집단지성/지식과 동일하다고 느꼈다. 학교, 사회, 직장, 인터넷 등을 통해 사람들은 같은 내용의 정보를 접하게 되고, 다수가 믿는 것이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일은 묻히고 사라진다.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인 ‘인지 공간’과 2021 올해의 문제소설로 선정된 ‘오래된 협약’ 등을 포함해 작가가 2년간 쓴 7편의 단편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헌책을 사다 보면 책장에 적힌 메모나 책갈피에 끼워진 편지 등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에는 작가 김초엽의 사인이 들어 있었다. 게다가 이 책은 초판본이다. 작가가 사인한 초판본 책을 판 사람은 누굴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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