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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이별 이야기

by 동쪽구름 2021. 2. 9.

영국 영화 '호프 갭'(Hope Gap)을 보았다.

 

‘그레이스’와 ‘에드워드’(에드)는 영국 바닷가 작은 마을에 사는 중년의 부부다. 그들에게는 런던에 사는 20대의 아들 '자쉬’가 있다. 그는 가끔 부모를 보기 위해 집을 찾는다.

 

에드는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이며, 아내인 그레이스는 명시 편집자이다. 그들에게는 각자의 작업실과 책상이 있다. 에드의 책상은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지만, 그레이스의 책상은 너저분하게 어질러져 있다. 그들의 책상은 각자 반대편 창을 보고 있어 늘 서로에게 등을 지고 있다. 서로에게서 멀어진 그들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매일 학교에 나가는 에드와 달리 그레이스는 집에서 일을 한다.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온 에드는 차를 만들어 아내에게 준다. 아내의 책상에서 반이나 남아 있는 찻잔을 보며 그가 말한다. “당신은 늘 이렇게 차를 다 마시지 않고 남기는구려.” 그러자 그녀가 답한다. “글쎄요. 나는 무언가 끝이 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아요.”

 

29번째 결혼기념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두고 시작된 말다툼 끝에 에드는 마침내 그레이스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아내가 받을 충격을 염려하여 아들에게 집으로 와 줄 것을 부탁한다. 그는 문제가 있는 학생의 어머니였던 ‘엔젤라’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졌음을 아들에게 고백한다. 아내를 만족시키기 위해 늘 노력했지만, 그녀는 결코 자신에게서 만족을 찾지 못한다고 말한다. 엔젤라를 만나고 나서 비로소 사랑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토스트와 차를 앞에 놓고 아내에게 차근차근 자신이 왜 그녀를 떠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는 달랑 가방 하나만 들고 집을 나선다.

 

그 후 자쉬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를 오가며 두 사람의 입장을 전달한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를 걱정하여 주말마다 집으로 온다. 혹시라도 어머니가 자살할 것을 걱정한다. 만약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그레이스가 죽기로 결심한다면 자신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다만 미리 말을 해주어 작별의 인사는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한다. 자기도 사는 것이 쉽지 않다고. 어른인 어머니가 앞서 힘든 삶을 살아내는 것을 보면 자기도 그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애완견을 들여 남편의 이름인 ‘에드’로 이름 짓고, 조금씩 외부활동을 시작한 그레이스는 어느 날 엔젤라의 집을 찾아간다. 엔젤라와 마주한 그녀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묻자, 엔젤라가 답한다. “세 사람의 불행한 사람이 있었죠. 이제 두 사람은 행복해졌어요. 한 사람만이 아직도 불행하죠.”

 

집을 나가는 그녀를 따라가며 에드는 그녀에게 그냥 친구로 지낼 수는 없겠는가고 묻는다.

 

웹 디자이너 일을 하는 자쉬는 명시 편집자인 어머니를 위해 새로운 웹사이트를 만들어 준다. 키워드를 치면, 그 단어에 해당하는 명시를 찾아 주는 사이트다.

 

나이 든 사람들의 졸혼과 휴혼 선언이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 주는 영화다.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는 상대방의 희생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욕망과 열정을 사랑이라고 부르며 과거에 맺었던 언약은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은 아닌지… 과연 사랑은 육적인 것인지… 아니면 고루한 노래 가사처럼 “언제나 오래 참고… 언제나 온유하며… 성내지 아니하”는 것인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사람도 변하고, 사랑도 변한다.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바뀌는 것이 사랑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변하는데 사랑만 남아 있으면, 결국 나는 그 사랑을 떠나게 되지 않겠나.

 

영화는 비 오는 날 오후에 듣는 실내악처럼 차분하고 조용하지만 애잔한 슬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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