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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쌀과자

by 동쪽구름 2020. 11. 27.

우리 집에서 벌어지는 일의 중심에는 늘 내가 있다. 이번 일도 시작은 나였다.

 

11학년에 다니는 조카딸 민서가 벌써 내년 가을이면 대학 입학원서를 써야 한다. 3월에 시작된 코로나 사태 이후 지금까지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다음 학기에도 언제쯤 학교에 돌아가게 될지 알 수 없다. 미국의 대학 입학은 수능이나 내신 등의 점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지원자의 학교 활동과 인성을 고루 참작하여 정해진다. 그중 하나가 봉사활동이다. 봉사 활동으로 크레딧을 쌓아야 하는데 이러고 있으니 고민이라는 것이다.

 

잠시 생각한 후 내가 의견을 내놓았다. 요즘 민서가 과자 굽는 일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과자를 구워 집 근처 양로병원에 가져가면 어떤가 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비영리 단체를 찾아가 봉사를 하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본인이 창의적으로 만든 봉사활동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아내와 민서가 모두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에 하면 좋겠다는 데까지 합의를 보았다.

며칠 생각해 보니 나이 드신 노인들이 모여 있는 양로병원인데 혹시나 그 과자를 먹고 탈이 나면 책임 문제가 생길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병원에서 과자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건강한 노인들이 모이는 노인센터가 좋을 듯싶었다. 마침 교우 중 한 분이 근처 노인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내가 연락을 해서 가져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문제는 인원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노인들이 센터에 나올 수 없어 매일 도시락을 배달하는데, 150명 분이 나간다고 한다.

 

반죽을 하고 일일이 떼어 판에 놓고 구워야 하는 과자보다는 판으로 만들어 여러 개로 자를 수 있는 쌀과자를 (rice krispies) 만들게 되었다. 달달하니 커피나 차와 같이 먹어도 좋고, 쉽게 소화가 되는 과자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좋아하셔서 가끔 아내가 만들어다 드리곤 하던 과자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노인들에게 드리게 되었다. 한 봉지에 두 개씩 넣으려면 300개가 필요하다. 두 판을 만들어 잘라보니 도합 9판이 필요하다.

 

(완성된 과자들)

아내와 민서가 3일 동안 매일 오후 커다란 냄비에 버터와 마시멜로를 녹이고 쌀로 만든 시리얼을 붇고 주걱으로 잘 섞어 만들었다. 판에 넣고 식혀 굳으면 꺼내서 도마에 놓고 길이를 맞추어 아내가 자르고 민서가 포장지에 넣었다. 중간에 재료가 모자라 아내가 장에 한번 더 다녀오고, 포장지가 모자라 내가 아마존에서 오더를 했다. 재료값만 $70이 넘게 들었고, 두 사람이 3일 동안 도합 6-7 시간씩 노동을 들였다.

 

우여곡절 끝에 150 봉지의 과자를 만들어 추수감사절 하루 전날 노인센터에 전달했다.

 

아마 오늘 추수감사절 도시락에 담겨 노인들에게 배달되었을 것이다. 며칠 후 맛있게 먹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좋겠다. 

 

민서가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나누어 주는 기쁨을 배웠기를 바란다. 이번에도 나는 말로만 생색을 내고 별로 한 일은 없다. 

 

(가운데가 민서, 양 옆은 노인센터 관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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