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에서

불법 도박장

by 동쪽구름 2020. 12. 7.

내가 불법 가정집 도박장을 개설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처조카 두 명이 6년째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그 사연은 또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음에 하기로 하자. 민서는 11학년이고, 준이는 10학년이다. 지난 3월 중순 코로나 사태로 학교가 문을 닫은 이후, 지금까지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친구를 만난 적도 없으며 나들이를 나간 일도 없다. 병원에 가거나 책을 반납하고 받아오기 위해 학교에 간 것이 유일한 외출이다. 아, 그리고 매일 한차례 동네 산보한다.

 

며칠 전의 일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아내와 식탁에 앉아 있는데, 소파에 있던 민서가 건너와 고모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더니 휴지를 집어 눈물을 찍어 낸다.

 

이야기인즉, 너무 외롭고 힘들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들어가면 남들이 즐겁게 지내는 것만 보이고, 친구들과도 연락이 뜸해져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고 한다. 자기는 전화나 메신저보다는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소통도 하고 스트레스도 풀곤 했는데 대면이 안되니 외롭다고 한다.

 

그나마 동생 준이가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는데, 그놈도 요즘은 인터넷 게임을 하며 친구들과 통화하는 시간이 늘어 누나와는 잘 놀아주지 않는 모양이다. 며칠 전에는 울고 싶은데 식구들이 들을까 봐 욕실에 들어가서 몰래 울고 나왔다고 한다.

 

한 집에 네 식구가 살아도 모두 따로 논다. 저녁 7시 이후, 거실에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등 불빛만 남고 모두들 각자 방으로 들어간다. 함께 방에 들어온 아내와 나도 공간만 공유할 뿐, 각자의 놀이에 빠진다. 나는 책을 보거나 바둑을 두고, 아내는 스마트 폰을 본다. 그리고 먼저 졸린 사람이 “잘 자”하고 잠들어 버린다.

 

슬그머니 준이에게 가서 플레잉 카드를 달라고 해 가지고 나왔다. 식구들을 모아 블랙잭을 가르쳐 주었다. 첫날은 모두 연습게임. 게임을 하는 동안 민서의 표정이 밝아졌다.

 

다음날은 각자 2달러를 10전짜리 동전으로 바꾸어 모이게 했다. 게임 당 10전 (백 원)씩 걸고, 딜러는 5판마다 돌아가며 한다. 

 

한 가지만 하면 지루할 수 있어, 화투로 도리짓고땡도 가르쳐 주었다. 초보자들이라 한쪽에 1-10월까지 화투를 나열해 놓았다. 족보는 땡만 가르쳐 주었다. 이것도 한 판에 10 전이다. 따로 베팅을 올리고 받고 하는 것은 없다. 첫째 날, 민서는 50전을 따고, 아내는 본전, 나는 10전을 잃었고, 준이가 거금 40전을 잃었다. 

 

저녁을 먹고 식탁에 판을 펴면 2천 원으로 시작한 판돈 주머니를 들고 모여든다. 기껏해야 한 판에 딸 수 있는 돈은 자기가 건 돈 포함 40전 (사백 원)이다. 그래도 “아” 하는 탄식과 “와” 하는 소리가 나며 제법 열기가 돈다. 겨울밤이 춥지 않다. 코로나 바이러스나 외로움 따위가 끼어들 틈새는 없다.

 

학생들의 진도에 따라 다음 단계는 고스톱과 포커다. 

 

'일상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아버지  (0) 2021.03.16
하린아, 생일 축하해!  (0) 2021.02.20
쌀과자  (0) 2020.11.27
병원 이야기 (3)  (0) 2020.11.20
병원 이야기 (2)  (0) 2020.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