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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16

죽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는 시크한 독거 작가 ‘사노 요코’의 마지막 에세이 집이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그녀가 호스피스 병원에서 경험한 이야기며 그녀의 죽음 철학이 들어 있는 책이다. 책에는 그녀가 신경과 의사인 ‘히라이’ 박사와 나눈 대화가 한 챕터를 이루고 있는데, 마치 선문답 같은 이야기들이다. 호흡이 멎고 심장이 멈추어도 머리카락은 자란다. 몸의 세포들 중에는 사후 24시간 정도 살아있는 것들도 있다고 한다. 사노는 마음이 가슴 부근에 있는 것 같다고 하지만, 히라이는 우리의 마음은 대뇌피질에 존재한다고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소뇌가 없으면 몸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죽지는 않으며, 뇌간을 모두 들어내면 호흡을 할 수 없지만 인공호흡기를 연결하면 계속 살 수 있다.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숨을 쉬고, 혈압과.. 2020. 8. 2.
결국 모든 것은 이별한다 미영씨가 죽었다. 췌장암 진단을 받은 지 4개월 만이다. 이렇게 빨리, 이렇게 허무하게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녀는 아내의 절친이다. 고향 친구며 동창이다. 시험관 시술로 낳은 쌍둥이 두 딸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유방암이 발견되었다. 유방암 투병 중 그녀의 소망은 딸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사는 것이었다. 수술과 힘든 항암을 잘 견뎌내고 건강을 되찾았다. 지난 연말에는 UCSB에 한 학기 교환학생으로 와 있던 큰 딸을 보기 위해 미국에 와 우리 집에서 3주가량 머물다 갔다. 함께 미사도 가고 성탄절을 보냈다. 암을 다 이겨낸 것처럼 건강해 보였는데, 한국으로 돌아가고 얼마 후 췌장암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공무원인 남편의 근무지가 세종시라 몇 년 동안 주말 부부로 살다.. 2020. 7. 29.
추억 만들기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고 했다. 사람이 죽으며 가지고 가는 것은 무엇인가. 죽으면서 가지고 갈 수 있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다. 호랑이도 죽으면 맨손으로 가고, 사람도 죽으면 맨손으로 간다. 호랑이야 살아서도 집 한 칸 없이 산에서 풀 베개 하며 살았으니 가지고 갈 것이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사람은 온갖 명예와 재물을 쌓아놓고 하나도 가지고 갈 수 없다니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물질은 세상의 것이니 세상을 떠날 때 다 두고 가야 하지만, 딱 한 가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건 우리가 세상을 살며 보고 느끼고 경험했던 추억이다. 이것만은 죽음조차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다. 막내아들이 얼마 전 아빠가 되었다. 풋내기 엄마와 아빠는 아마도 자주 그 아이.. 2020. 7. 8.
달콤한 유혹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죽음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까마득히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대 중반쯤의 나는 죽음을 매우 무서워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그동안 맺어왔던 모든 인연과도 끝이 나며, ‘나’라는 존재가 이 지구 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공포였다. 죽음을 생각하면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눈물을 흘린 날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죽음은 두렵지 않다. 도리어 내가 알고 사랑하던 사람들이 모두 떠난 세상에 혼자만 남게 된다는 사실이 더 두렵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세월이 갈수록 추억을 공유할 친구와 친척이 별로 남아있지 않음을 아쉬워하셨었다. 캘리포니아 주가 다섯 번째로 존엄사를 허용하는 주가 되었다. 그동안 불치병의 고통 중.. 2020.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