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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3

병원 이야기 (5) 6월 30일, 금요일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날이었다. 인수인계는 모두 끝이 났기 때문에 특별히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오후에 몸이 으슬으슬 춥더니, 저녁이 되니 소변을 보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아무래도 UTI (요로 감염증) 증상과 유사하다. 병원은 이미 문을 닫았고, 이 시간에 어전트 케어에 가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 하룻밤 자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밤부터 증상은 더 심해졌고, 밤새 식은땀을 흘리며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새벽에 눈을 떠 카이저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전화 상담이 가능하다. 의사 면담을 신청하고 다시 잠이 들었는데, 1시간 후에 의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증상을 이야기하니 UTI인 것 같다며 아침에 병원에 가서 소변 검사를 하고 항생제를 처방해 줄 테니 10일간 복용하라고 한다. 의사도 안.. 2023. 7. 8.
피프티 피플 정세랑의 장편소설 ‘피프티 피플’은 2016년 1월부터 5월까지 블로그에서 연재했던 작품들은 묶은 책이다.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가깝게 멀게 연결된 5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주게 하는 책이다. 50개의 장에는 병원 안팎의 사람들이 처한 어려움과 갑작스러운 사고, 그들의 힘든 삶과 고민들이 들어 있다. 마치 신문 사회면의 하단 기사 같기도 하고, 한 편의 영화에서 중간의 10-15분 분량만 잘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가 책상에 앉아 상상으로 쓴 것이 아니라, 자료를 모으고 취재와 자문을 구해 상세하고 구체적인 사실을 담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 보안요원, 이송 기사, 임상시험 책임자, 공중보건의 등이 등장하고 응급실, 정신과, 외과 등을 찾는 환자들의 사연.. 2022. 1. 11.
가을의 시작 9월은 때늦은 폭염으로 시작되었다. 남가주 대부분의 도시가 최고기온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폭염의 끝에 시작된 산불로 하늘이 재와 연기로 덮여 며칠씩 제모습의 해를 볼 수 없다. 붉은 해와 붉으스름한 하늘이 마치 영화에 나오는 종말을 맞는 세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봄을 코로나로 시작해서, 거리두기로 여름을 보내고, 계절은 이제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기울어진 해는 긴 그림자를 만들고, 아내의 텃밭은 소출을 끝낸 채소들을 거두어 내어 휑하니 빈자리가 늘어가고 있다. 마당에는 감나무가 한그루 있다. 몇 년 전에는 제법 감이 많이 달려 이웃에 사는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는데, 금년에는 딱 6개가 달렸다. 그나마 여름을 지나며 다람쥐가 하나둘씩 따먹어 2개가 남았다. 잎사귀 사이에 숨어있어 다람쥐의 눈에 .. 2020.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