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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칼럼15

가을 편지 내 나이 6-7살 때의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무렵 나는 소아마비를 치료하러 을지로에 있는 메이컬 센터에 다니고 있었다. 그날은 외할아버지와 병원에 갔었다. 물리치료를 마치고 약을 받아가야 했다. 할아버지는 맹장수술한 자리에 탈장이 생겨 무거운 것을 오래 들지 못하셨다. 나를 벤치에 내려놓고 모퉁이를 돌아 약국으로 약을 타러 가셨다. 곧 온다던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혹시 나를 버리고 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훌쩍이다 잠시 후, 엉엉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모두들 나를 슬쩍 쳐다보고는 그냥 지나쳐 가버렸는데, 하얀 간호사복을 입은 누나가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내게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훌쩍이며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나를 덥석 팔에 안고 약국으로 갔다. 마침 약을 찾아오.. 2023. 11. 25.
가여운 영혼 주일 아침, 성당 미사에 참석하며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노인들 뿐이다. 나만해도 50대에 성당에 다니기 시작해 이제 60 중반을 넘었다. 인구의 고령화는 교회에서도 진행 중이다. 늘 보이던 노인이 안 보이면 혹시 아픈 것이 아닌가 싶어 주변에 물어보게 된다. 몸이 아파 못 나오던 교우는 몇 주 후면 다시 나타나지만, 다투고 삐져서 떠난 교우는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 개인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노인들은 다들 고집을 가지고 산다. 자신의 기억과 생각만이 옳으며 남들이 틀렸다고 굳게 믿는다. 노인들이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라. 대개는 일방통행이다.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하다가 간혹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걸 트집 잡아 언쟁이 벌어진다. 나는 4년째 매일 5년 일기장에 일기를 .. 2023. 10. 21.
그림 공부 40년 만에 대학(LAVC) 캠퍼스로 돌아갔다. 팬데믹 동안에는 온-라인 강의를 들었는데, 가을 학기부터는 거의 모든 미술 클래스가 오프-라인으로 바뀌었다. 내가 듣는 과목은 ‘수채화 I’이다. 첫날 수업에 들어가니, 작년에 온-라인 수업을 가르쳤던 교수가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학생들의 연령대는 20대 초반에서 60대 중반. 대충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1)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서, (2) 교양과목 학점이 필요해서, (3) 그림을 배우고 싶어서. 그림을 배우고 싶어서 수업을 듣는 이들은 대개 나이가 든 사람들이다. 이들은 나처럼 정식으로 등록을 해서 과제물도 제출하고 시험도 보아 학점을 이수하려는 사람과 그냥 수업에 들어와 성적의 스트레스 없이 그림만 배우려는 사람으로 나뉜다. 늦은 .. 2023. 9. 30.
인연 나는 사람 또는 사물과의 관계에 있어도 인연은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런 인연들을 소중히 생각한다. 주정부 산재보험기금에서 31년 일하고 퇴직했는데, 실은 입사 1년 만에 다른 부처로 승진되어 그곳을 떠났었다. 승진을 하게 되면 승진시험 합격자 명단에서 이름이 빠져야 하는데, 누군가의 실수로 내 이름이 계속 남아 있었다. 2달 후, 산재보험기금에서 자리가 있으니 오라는 연락이 왔다. 다행히 승진시켜 주었던 부처에서 별 문제를 삼지 않아 다시 돌아가 30년 근속을 하게 되었다. 운전 면허증이 아직 종이로 발행되던 시절의 일이다. 면허증을 주머니에 넣어 둔 채 옷을 빨아 면허증이 휴지가 되고 말았다. 면허증을 재발급받기 위해 DMV에 갔다. 까다로운 직원에게 걸렸던 모양이다. 면허증 뒷면에 장애인 운전장치가 .. 2023.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