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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생일 내 기억 속 환갑은 큰 잔치였다. 왜냐하면 내가 처음 보았던 환갑잔치가 매우 큰 잔치였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경기도 진관리에 살았다. 아들이 없던 외할아버지의 환갑잔치를 큰 딸인 어머니의 집에서 하게 되었다. 이틀 전부터 어머니의 사촌들과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여 전을 부치고, 고기를 삶고, 채소를 볶아 음식을 장만했다. 잔칫날 아침에는 한과며 과일, 미리 준비한 음식들을 접시에 쌓아 올려 상을 차리고, 병풍 앞에 상을 받고 앉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일가친척들이 서열 순서대로 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절을 하는 옆에서는 기생 출신이라는 중년의 여인네가 구성진 창을 했다. 하루 종일 손님들이 오갔으며, 손님이 올 때마다 음식을 담은 작은 소반이 나왔다. 어떤 이는 밥을 먹었고, 다른 이는 술과 안주만 .. 2023. 7. 31.
11월 첫 주말 세미(딸아이)네 가족이 오랜만에 놀러 왔다. 아이들 재롱에 정신을 놓고 있는데, 그레이스(작은 며느리)가 임신한 걸 알고 있냐고 딸이 묻는다. 모른다고 하니 순간 멈칫하더니 얼른 전화기를 집어 든다. 아마도 오빠에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묻는 모양이다. 잠시 후, 오빠가 내게 알려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 얼마 전 전화를 했을 때도 아무 말이 없었는데, 아마도 추수감사절에 만나면 이야기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다음날 아침, 축하 꽃이라도 하나 보내 주고 싶은데 생각해 보니 세미의 임신 소식을 듣고는 아무것도 보내준 것이 없다. 혹시라도 작은 며느리에게 꽃을 보내 준 것을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세미가 섭섭해할 것 같아 갑자기 고민스러워졌다. 성당 가는 길에 아내에게 의논을 하니, 쉽게 답을 준다. 넌지시 세미에.. 2022. 11. 7.
또 딸입니다 딸아이가 둘째를 가졌다. 내년 1월에 낳으면, 첫째 하린이와는 23개월, 두 살 차이다. 터울로는 딱 알맞다. 친정아버지의 마음은 기쁨보다는 딸 걱정이 먼저다. 임신과 출산, 게다가 고만고만한 아이 둘을 키우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얼마 전 초음파 검사를 하고 아기의 성별을 알게 되었다. 딸이다. 소식을 듣는 순간, 혹시나 시부모님이 실망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돈은 나보다 나이가 한두 살 아래지만, 언행을 보면 상당히 한국적이다. 사위가 외아들인데 첫아이가 딸이었으니, 둘째는 아들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 같아서다. 이미 여러 명의 손자 손녀가 있는 내게 손주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임산부와 아기가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보니, 굳이 따지자.. 2021. 9. 12.
출생의 비밀 봄비가 내리던 주말 오후, 영화 ‘차이나타운’(Chinatown)을 보았다. 사설탐정 ‘제이크 기티스’(잭 니콜슨)가 수도국 국장 ‘홀리스 멀웨이’의 아내로부터 남편의 불륜을 조사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 후 홀리스의 진짜 아내인 ‘에블린 멀웨이’(페이 더너웨이)가 나타나면서 조사를 부탁한 여인은 가짜였음이 밝혀진다. 얼마 후, 홀리스가 의문사를 당하며 제이크는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영화의 제목인 ‘차이나타운’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제이크의 전직이 형사였으며, 한때 차이나타운 지역에서 일을 했다는 것과 영화가 그곳에서 끝난다는 것 말고는 차이나타운은 스토리와는 별 연관이 없다. 홀리스와 에블린의 아버지 ‘노아 크로스’는 한때 수도국을 소유한 동업자였다. 그 후 .. 2021.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