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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60

삼팔선의 봄 "눈 녹인 산골짝에 꽃이 피누나 철조망은 녹슬고 총칼은 빛나 세월을 한탄하랴 삼팔선의 봄 싸워서 공을 세워 대장도 싫소 이등병 목숨 바쳐 고향 찾으리.” ‘삼팔선의 봄’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6월이 되면 ‘가요무대’에 꼭 한 번씩 등장하는 노래다. 화창한 일요일 오후, 세차장에서 차를 세차하려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문득 이 노래가 생각났다. ‘가요무대’에서는 설운도가, 방송에서는 나훈아가 부른 것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다. 하지만 나는 어느 이름 없는 노병이 부른 버전으로 기억하고 있다. 20여 년 전, 타운의 중식당 ‘용궁’에서 어머니 환갑잔치를 해 드리던 날의 일이다. 가족들의 순서가 끝나고 가라오케 타임으로 넘어갈 즈음 헌팅캡을 삐딱하게 쓴 중년의 사내가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 2020. 6. 26.
너는 천당이 있다고 믿느냐? 수년째 전립선 암을 앓고 계신 아버지에게서 최근에는 상당히 진전된 간암이 발견되었다. 전립선암 치료를 위해 찍었던 CT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두 달 남짓한 기간에 벌써 5 파운드나 살이 빠지셨다. 어제 아침 병원에 모시고 가는 길에 생긴 일이다. 운전하는 내게 아버지가 물으셨다."너는 사람이 죽으면 천당이 있다고 믿느냐?" 생각지도 않던 질문인지라 궁색하게 "잘 모르겠네요. 보고 왔다는 사람이 없으니 알 수가 없죠."라고 답했다. 그러자 잠시 차창 밖을 바라보시던 아버지가 "없어. 없는 것 같아.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 너무 허무하니까 그냥 사람들이 만든 걸 꺼야." 하시는 것이었다. 그제사 나는 내가 크게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예, 아버지, 있고 말고요. 혹시 아.. 2020. 6. 25.
보고 싶다 친구야 가끔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이름은 진작부터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를 친구로 기억하지만, 그는 나를 이미 잊었는지도 모른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귀하던 시절, 더운 여름날이면 외가의 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더위를 식히곤 했다. 내가 친구라고 기억하는 아이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었다. 외가는 관훈동에 있었는데, 바로 옆동네인 인사동에는 요정이 많았다. 그 아이의 엄마는 그런 요정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오후가 되면 짙은 화장을 하고 출근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공통점은 소아마비를 앓았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난 아예 걷지를 못했지만, 그 아이는 목발을 짚고 다녔다는 것이다. 누가 먼저 말을 건넸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린 친구가 되었고, 엄마가 일나 간 오후가 되면.. 2020. 6. 24.
어머니의 앨범 동생이 어머니 짐을 정리해서 앨범을 가져왔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수도 없이 이사를 다녔고, 전역 후에는 집을 수리해서 파는 집장사를 하느라고 이사를 다녔고, 벽제에서는 안채를 영업장소로 내놓고 뒷채로 이사를 했고, 미국에 이민 와서도 LA에서 밸리로 밸리에서 벤추라로, 그리고 다시 밸리로… 참 많이도 이사를 다녔던 앨범이 마침내 우리 집에 왔다. 달랑 원베드룸 노인 아파트에 새로 가구를 들여놓느라고 짐을 추리다 보니 마땅히 보관할 장소가 없어 부모님 살아생전에 정리를 하자고 동생이 들고 온 것이다. 60년도 넘은 사진들이 나온다. 어머니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버지 군 시절의 사진들… 미군 고문관을 초대해 호랑이 족자를 선물로 주는 사진, 아버지가 미국 출장 와서 미군들과 찍었던 사.. 2020. 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