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보다 가을에 시간이 빨리 가는 건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더 들었기 때문인지, 이번 학기는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절반이 지나갔다.
비록 한 학기에 한 과목씩이긴 하지만, 미술공부를 시작한 지 2년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리기가 수월해질 줄 알았는데, 점점 더 어려워진다. 과제를 끝내고 나면 다음 과제물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과제를 받고 나면 머리는 온통 그림 생각뿐이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정신건강에 좋다고 스스로에게 타이르지만, 이 나이에 왜 사서 고생을 하나 싶어 수강을 드롭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중간고사로 받은 과제는 상자 안에 그리고자 하는 물건을 넣고 입체감을 살린 정물화를 그리는 것이었다.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실기는 아직도 많이 부족했다. 원근법이 틀렸고, 배열한 물건들의 크기와 위치가 조금씩 틀렸다. 교수의 지적을 받고 몇 군데는 젯소를 발라 다 지우고 다시 그렸다. 꼬박 3일, 하루 3-4시간씩 걸려 그리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처음보다는 좋아졌다. 끝내고 나니 여기저기 틀린 곳과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
어제는 학교에서 지난 학기 아크릴 클래스를 같이 들었던 중년의 백인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같은 시간대에 옆
교실에서 수채화를 듣고 있었다. 지나고 나니 아크릴 반 교수 아멜리아가 좋은 선생이라는 것을 알겠다고 한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녀는 학생들의 부족한 부분을 잘 파악해 필요한 조언과 설명을 해 준다. 같은 수업을 듣지만 학생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이번주 과제는 캠퍼스의 한 장소를 선택해 그리며 그곳에는 없는 물건이나 상황을 그려 넣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화단을 그리며 그곳에는 없는 고양이를 그려 넣거나, 빌딩을 그리며 옥상에는 없는 사람을 그려 넣는 것이다.
오늘 신문에 보니 “미술의 다양한 기능”이라는 칼럼이 실렸다. 필자의 한국에 사는 친구는 출석하는 성당에 미술반을 만들어 열심히 지도하는데, 거의 모두가 “골치 아픈 생각하지 않고, 편안해지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 병아리 화가”들이라고 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글 쓰고 그림 그리는 한국사람들은 중/노년의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문득 나는 왜 그림공부를 시작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막연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나도 그리는 과정을 즐긴다. 작품의 평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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