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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야기

미국 중소도시의 몰락

by 동쪽구름 2020. 7. 22.

몇 해 전 동부의 누이네 집에 다녀오며 느낀 일이다. 2차 대전을 전후해서 개발된 캘리포니아 주와 달리 동부는 미국의 역사를 담고 있는 지역이다. 그만큼 낡고 오래된 곳이기도 하다.

 

누이는 펜실베이니아의 ‘엘렌 타운’에서 30마일 떨어진 ‘델라웨어 워터 갭’이라는 작은 마을에 산다. LA에서는 엘렌 타운까지 직접 가는 비행기가 없어 시카고를 경유해서 갔다.

 

LA 발 비행기는 상당히 큰 기종의 항공기였는데 탑승부터 수월치 않았다. 가방을 화물로 체크인하면 25달러의 비용을 더 내야 하기 때문에 승객들은 무겁고 큰 가방들을 무리하게 기내로 끌고 들어왔고, 나중에 탑승하는 승객들은 짐을 넣을 공간이 없어 뒤늦게 짐을 화물칸으로 내 보내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이런 현상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발생했다.

 

계속 성장을 하고 있는 한국이나 중국의 항공사들은 매해 새로운 기종을 구입해서 노선에 투입하고 있는데 반해, 유류파동과 불경기로 다운사이징을 계속한 미국의 항공사들은 근년에 새로운 기종의 비행기를 구입하지 않았다. 지금도 캘리포니아 주의 사막지대에는 사용하지 않는 수백 대의 비행기들이 벌판에 버려지다시피 보관 중이다.

 

그런 탓인지 내가 탄 비행기는 무척 낡았고, 요즘은 가정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투박한 스크린이 앞쪽의 칸막이 벽면에 붙어있었다. 영화를 보여주는 동안에는 서너 줄에 하나씩 작은 스크린이 머리 위에서 내려왔다. 내 앞자리에는 키가 큰 사람이 앉아 있어 나는 고개를 옆으로 빼서 스크린을 보아야 했다. 개인용 모니터가 좌석마다 붙어있는 한국 항공사의 비행기들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공항 데스크에도 직원이 부족해 보였다. 만약 미국이 국내 항공노선을 외국 항공사들에게도 개방한다면, 한국이나 일본의 항공사들이 순식간에 시장을 점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누이가 사는 마을은 700여 가구가 사는 전원마을인데 인구가 적다고 편지를 배달하지 않아 우체국에 가서 우편물을 받아와야 한다.

 

근처의 다른 소도시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때 중산층이 살았다던 아름다운 콜로니얼 풍의 다세대 주택은 정부보조의 저소득층 주거지로 바뀌어 있었다. 머리 위로는 전기, 전화선을 비롯 각종 케이블이 어지럽게 얽히고설켜있고 1930년대 대공황 때 공공사업으로 쌓았다는 도로변의 돌벽들은 여기저기 깨어져 나갔다. 지방정부가 예산이 없어 개, 보수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대도시 뉴욕시에서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갔던 날, 뉴욕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낡은 도로에는 사방에 길이 파여 물웅덩이가 생겨났고, 물에 떠 내려온 온갖 쓰레기들이 군데군데 모여있었다. 연말이면 화려한 불 빚을 자랑하는 뉴욕의 참모습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한국의 지방정부들이 지방자치제로 각종 사업을 벌여 도시를 새로 정비하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결국 상당수 미국의 중소도시들은 폐허로 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LA 같은 대도시는 계속 자본이 들어와 다운타운의 재개발 등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공장 등이 아예 외국으로 떠나버린 도시의 경우는 높은 실업률에 사람들은 그 지역을 떠나고 그에 따라 세수가 줄어든 지방정부의 예산 적자 등으로 경제회복이 쉽지 않을 듯싶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오래 지속되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점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은 거두어들인 세금으로 낙후된 기간시설을 개, 보수하기보다 유권자들의 표심잡기에 급급하다. 기업의 총수들은 인프라에 재투자하기보다는 당장 이윤을 내어 높은 연봉과 성과급을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는 오늘 나의 불편함과 약간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어둡다. 선진국의 어두운 뒷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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