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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거라지 세일

by 동쪽구름 2020. 7. 20.

벼르던 거라지 세일을 했다. 차고를 정리하던 아내가 거라지 세일을 하겠노라고 선언하더니 그다음 주로 날짜를 잡아버렸다. 금요일 오후 퇴근길에 보니 세일을 한다는 종이를 골목 군데군데 전봇대에 붙여 놓았다. 남들은 요란한 색상에 큰 글씨로 만들어 붙이던데, 우리 것은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겨우 보일까 말까 하다. 저걸 보고 사람들이 올까?

 

다음날 아침 6:30분, 아직 물건을 다 꺼내지도 않았는데 첫 손님이 왔다. 많이 살 것처럼 물건을 이것저것 한참이나 고르더니 달랑 햇볕 가리개를 하나 산다. 1불이다. 아내는 그녀가 예의가 있는 손님이라며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했던 그릇을 덤으로 주었다. 자기가 첫 손님인 것을 알고 개시는 해 주고 갔다는 것이다. 

 

아침나절 심심치 않게 손님들이 찾아와 물건은 많이 정리가 되었다. 워낙 싸게 팔아 조카 녀석들 용돈을 주고 나니 우리 식구가 짜장면 사 먹을 돈이 남는다.

 

철마다 안 쓰는 물건은 모았다가 구세군이나 '굿윌'에 가져다주곤 했는데, 진작에 거라지 세일을 할걸 그랬다 싶다. 돈 되고 쓸만한 물건이 제법 있었는데. 내가 안 쓰고 버리는 물건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요긴한 물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경험이다.

 

요즘은 옷이나 신발이 낡아서 버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싫증이 나거나 유행이 지나 안 입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흔히들 옷을 기워 입었다. 구멍이 나거나 찢어진 곳에 비슷한 색의 천을 대고 바늘로 기워 입었다. 조금 센스가 있는 엄마들은 천을 동물이나 꽃 모양으로 잘라 멋을 내기도 했다. 양말은 헌 알전구에 넣어 기우는 것이 생활의 지혜로 소개되곤 했었다.

 

언제부턴지 소비가 미덕이 되어 사람들은 더 빨리 더 많이를 추구하며 산다. 필요의 유무를 떠나 남이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하며, 새 것이 나오면 미련 없이 헌 것을 버리는 습관에 물들었다. 

 

환경문제를 떠나 과소비는 우리를 상대적 빈곤으로 내몰며 불안과 스트레스를 안겨 준다.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서는 돈을 더 벌어야 하고, 이를 위해 다른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하고 산다.

 

주어진 시간은 유한한 것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우리 각자에게 달려있다. 그 시간에 출세를 위해 공부를 더 하고, 돈을 더 벌기 위해 밤늦도록 주말까지 가게를 지키며 살 수 있다. 그렇게 살며 얻을 수 있는 것에는 큰 집, 좋은 차, 신형 스마트 폰, 명품 가방, 유행에 걸맞은 옷 등이 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잃는 것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좋은 차에게 얻는 행복은 새 차 냄새가 사라지면 없어지고, 신형 스마트 폰이 주는 행복은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사라진다.

 

한번 만들어진 행복한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잊었다 싶다가도 기억을 더듬어 꺼내보면 다시 행복해진다. 가능하면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며’ 살고 싶다. 그렇게 살며 생겨난 시간에 기억에 남을 시간들을 만들고 싶다.

 

추억을 만들기에 좋은 가을이 왔다. 다정한 이와 낙엽 떨어진 골목을 걸으며, 주말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테이블에 마주 앉아 커피 한 잔 나누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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