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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뒷간과 사돈집은 멀어야 한다

by 동쪽구름 2022. 12. 30.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어려운 사이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애매한 것이 친구도 아니고 친척도 아닌 사돈과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가까이 지내자니 다소 부담스럽고, 멀리 하자니 그 또한 아닌 것 같고. 오죽하면 “뒷간과 사돈집은 멀어야 한다”는 말이 생겨났겠나.

 

사돈과 친구처럼 지내며 여행도 함께 다니고 가족 모임도 함께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사돈들과 다소 거리를 두고 지내는 편이다.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좀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게 형님뻘인 며느리의 부모, 내 또래인 사위의 부모와는 매년 연말이면 선물을 주고받는 사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선물을 준비했다. 며느리의 친정에서 보낸 선물을 받지 못했다. 배달 사고가 생겼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날, 식구들이 모여 선물을 주고받으며 사돈집에 갈 선물을 주니, 샌디에이고에 사는 아들이 “아차” 한다. 사돈이 보낸 선물을 집에 두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며 하는 말이, 당분간 장인을 만나지 않으니 나보고 직접 만나 전해 주라고 한다. 

 

이런 일은 뒤로 미루면 안 된다 싶어 크리스마스 다음날 사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날 집 근처의 스타벅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사돈의 성격을 보아 아무래도 일찍 와서 나를 기다릴 것 같아 15분쯤 일찍 나갔는데, 아니다 다를까.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손녀의 돌에 보고 팬데믹이다 뭐다 해서 4년 만의 만남이다. 

 

마침 며느리가 기다리던 손자를 임신해서 화제는 그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무엇인가 함께 나누는 사이는 시간과 거리의 구애를 받지 않는 모양이다. 마치 엊그제 만났던 사람들 인양 30분 남짓한 시간에 온갖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사돈을 더 잘 알게 되었고, 내가 모르고 있던 아이들의 소식도 접하게 되었다. 

 

부모의 마음은 다 비슷하다. 나이가 들어도 자식들에게 폐는 끼치고 싶지 않고, 도리어 하나라도 보태주고 싶다. 내 자식이 귀하니, 그 배우자인 남의 자식도 귀하고, 그런 자식을 내어준 부모가 고마운 것이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받으면 주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사돈집에 보내는 선물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는 정도의 선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배달사고 덕에 만나, 커피 한 잔 함께 나눈 시간이 좋았다. 사돈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앞으로는 아이들에게 심부름시키지 말고 우리끼리 만나서 선물을 나누자고 한다. 헤어지는데, 사돈이 배를 한 상자 들고 온다. 배달 사고 난 선물이 언제 전달될지 알 수 없으니 대체 선물을 가지고 온 것이다. “이건 반칙입니다” 한마디 하고 부담 없이 고맙게 받았다. 

 

“사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세상의 모든 사돈들에게 보내는 새해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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