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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생일파티

by 동쪽구름 2022. 10. 15.

부모님 살아계실 때는 모든 가족행사는 두 분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설을 시작으로 어머니날, 아버지 날, 부모님 생신, 추수 감사절, 그리고 크리스마스로 한 해가 끝이 났다.

 

7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해 가을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나니, 가족행사의 구심점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부모님 제사를 모셔 가족이 모였는데, 3년 상을 끝으로 성당의 연미사로 대신하게 되니 형제들이 모일 핑곗거리가 사라졌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생일에 모이자는 것이었다. 생일을 맞는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날, 가고 싶은 식당으로 가족을 초대하는 방식이다.

 

생일이 흩어져 있어 한 달에 두 번 모이는 일도 없고, 어린 날의 추억을 함께 나눈 동시대 또래들의 모임인지라 제법 재미있게 잘 돌아갔다. 그러다 갑자기 맞게 된 코로나 펜데믹. 2년 넘게 모이지 못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이 되고, 경제활동이 재개되었지만 우리들의 생일 파티는 쉽게 다시 시작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는 힘들고 끝내기는 쉬운 모양이다. 중단한 일을 다시 시작하려면 계기가 필요하다.

 

누님은 동부에 사니 이곳에서는 5남매 중 둘째인 내가 가장 손위가 된다. 내가 칼을 빼들어야 할 것 같아 생일이 다가오자 초대의 메시지를 보냈다. 장소는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자주 갔던 타운의 중식당 Y.

 

4남매와 우리 아이들, 손자 손녀 모두 모였다. 식사를 기다리며 선물은 이미 다 풀어 보았고, 손녀딸과 케이크의 촛불도 끄고 나니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이렇게 가족이 모이면 이때쯤 꼭 한마디 하시곤 했다. 자식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지만, 아버지의 말씀은 대개는 한두 명의 심기를 건드려 어색한 자리가 되곤 했다.

 

나이가 들며 말이 많아지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 같은 모양이다. 이런 현상을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노인이 말이 많은 이유는 살면서 배우고 익힌 것을 후손들에게 가르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본능적 행위라는 것이다. 무엇이 먹으면 죽는 독버섯인지, 어떤 약초를 먹거나 바르면 병이 낫고 상처가 아무는지 등의 지혜를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다.

 

이제 이런 지식들은 스마트 폰이나 노트북으로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우리의 DNA에 각인된 본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이란 누가 가르친다고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스스로 살며 겪어 보아야 깨닫는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라'는 유태인 속담대로 그날 나는 입을 굳게 닫았다. 다음에도 열지 않을 작정이다. 곁에서 지켜보며 응원만 해줄 생각이다. 그리고 지갑은 아내가 열었다.

 

저녁을 먹은 Y 식당은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장소다. 부모님의 환갑잔치, 결혼기념일, 두 분의 칠순 등 큼지막한 가족행사는 모두 이곳에서 했다. 음식 맛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이 앉았던 상을 보니 빈 접시만 남았다. 나이가 들면 입맛도 까다로워지는 모양이다.

 

이 식당도 부지의 재개발로 곧 문을 닫을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이렇게 식당도 우리 집도 세대교체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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