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젠킨스 리드’의 베스트셀러 신작 소설 ‘Malibu Rising’ 은 LA 서쪽 바닷가 부촌 마을인 말리부의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파티를 무대로 하고 있다. 1983년 8월, 이 집의 주인이자 잘 나가는 서핑 모델 ‘니나 리바’의 파티가 벌어지는 하루의 이야기다. 요즘 나오는 책들은 대부분 각 장 별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이 책도 같은 기법으로 쓰였다. 한국의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저택에는 전설적인 록 가수 ‘믹 리바’의 네 자녀가 살고 있다. 큰 딸인 니나는 인기 절정의 슈퍼모델이고, 두 아들 ‘제이’는 서핑 챔피언, ‘허드’는 사진작가이며, ‘키트’는 귀염둥이 막내딸이다. 허드는 나머지 형제들과는 어머니가 다르다. 믹 리바가 바람을 피워 낳은 아들이다.
우리 집안에도 이런 사연을 가진 이가 있었다. 어머니의 사촌 남동생 중 하나는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낳은 아들이었는데, 아기 때 큰 집에 들어와 컸다. 커서는 본인이 다른 형제들과 배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어둡고 힘든 과거가 있다. 바람둥이 믹 리바는 아내와 어린 자녀들을 버려둔 채 집을 나가자, 어머니는 친정에서 물려받은 식당을 운영하며 힘든 살림을 이끌어 간다. 알코올 중독에 빠졌던 어머니가 죽자, 미성년자였던 니나는 동생들이 위탁가정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식당을 운영한다. 성인이 된 그녀는 법원의 허락을 받아 동생들의 법적 보호자가 된다.
60 - 70년대 한국에는 이런 누나와 형들이 많았다. 어린 나이에 남의 집에 가정부로 들어가거나, 가게나 공장 등에서 일을 하며 부모님을 도와 동생들을 학교에 보냈다. 양계장과 식당을 하던 우리 집에도 이런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한국의 근대/산업화의 산실이 된 구로공단에는 대부분 이런 사연을 가진 나이 어린 여공들이 있었다. 니나 역시 자신을 희생하며 동생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
바닷가 마을인 말리부에 살던 4남매는 어려서부터 파도타기를 배워 서핑에 능하다. 어느 날 니나는 사진작가의 눈에 띄어 사진모델이 된다. 미모에 서핑에도 능한 그녀는 순식간에 인기 모델이 되어 큰돈을 벌게 된다. 그녀는 이제 좀 여유롭게 동생들을 돌볼 수 있게 된다.
파티가 벌어지는 하루 동안 4남매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서핑 챔피언 제이는 심장에 이상이 있어 더 이상 격한 시합에 나갈 수 없게 된다. 형인 제이를 모델로 사진을 찍어 유명 사진작가가 된 허드는 형의 옛 애인과 연인의 관계다. 막내 키트는 파티가 벌어지던 날, 마침내 자신이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 성적으로 끌린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초대장 없이 누구나 올 수 있는 이 파티에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유명 연예인뿐만 아니라 말리부 상가에서 일하는 젊은 남녀들도 왔다. 술과 약물에 취한 사람들은 평소 숨겨두었던 욕망을 표출하며 밤이 되자 환락과 광란의 파티가 된다.
믹 리바를 아버지라고 알고 있는 여자가 찾아오고, 믹 리바도 파티에 나타나며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동생이 옛 애인과 연인의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 제이는 허드와 몸싸움을 벌이고, 믹 리바는 자녀들과 화해하기를 원한다.
누군가 부른 경찰이 도착하며 파티는 끝이 나고, 리바 가족도 새로운 시작을 위해 각자 잠시 집을 비운다. 누군가 버린 담배꽁초로 시작된 불은 이 대저택을 잿더미로 만들고 만다.
겨울에만 몇 차례 비가 오는 남가주는 여름이 되면 산불에 취약하다. 앞으로는 바다, 뒤로는 산을 두고 있는 말리부는 몇 년에 한 번씩 큰 산불을 맞게 된다. 타다 남은 나무들 사이로 새로 풀과 나무가 자라난다. 지난번 산불의 흔적이 사라질 때쯤 되면 또 불이 난다. 우리들의 인생도 이러하지 않던가. 뜨겁게 타오르던 열정과 욕망도 타버리면 재만 남는 것을. 그 불같은 광기의 피해를 알면서도 바람이 불면 다시 불꽃을 피워 올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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