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오츠 슈이치’는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호스피스 전문의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며 경험한 것을 엮은 책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다.
누구나 한 번쯤은 어디에선가 읽었거나 들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나는 지난여름 간경변 판정을 받고 죽음을 깊이 생각했었다. 요즘 LA 타임스의 부고란 기사를 보면 내 또래, 또는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제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죽을 시기를 알고 사는 것과, 모르는 채 사는 것은 다르다. 나는 한때 갑자기 죽는 것보다는 약간의 시간이 주어져 주변을 정리하고 죽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막상 내가 불치의 병일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접하니, 입장이 달라졌다.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갑자기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직검사 끝에 간에는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제목처럼 책에는 스물다섯 가지의 후회가 들어있다. 그중 내가 의미 있게 생각하는 몇 가지를 적어 본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 “지금 당장 시작하라. 새로운 사랑을 하고 싶다면, 바로 지금 시도하라.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면, 오늘부터 노력하라.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62 페이지)
매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두 가지는 꼭 하려고 노력한다. 매일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가끔은 바둑을 두고 영화를 본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 “환자들이 자신의 소중한 꿈을 외면하고 중간에 꿈의 끈을 놓았던 자신의 모습을 후회한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그것을 향해 충분한 노력을 했더라면 후회는 한결 줄어들 것이다.” (87 페이지)
늘 꿈을 꾸며 살았다. 젊어서는 출세하는 꿈을 꾸고 노력했으며, 어느 정도 성과도 올렸다. 요즘은 책을 출간하는 꿈을 꾼다. 그동안 써온 글들을 묶어 책을 내는 것이 2021년의 목표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만나러 가세요. 산을 넘어 지금 당장 만나러 가세요.” (97 페이지)
내게는 다소 때 늦은 후회가 아닌가 싶다.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다. 이건 이제는 그냥 놓아두어야 할 것 같다.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 “거동이 불편할 때는 떠나고 싶어도 떠나기 어려운 현실을 수없이 만나본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떠나라. 여행은 모든 후회를 말끔하게 씻어줄 것이다.” (119 페이지)
여행은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다. 한때는 밴을 개조해서 아내와 미국을 횡단하는 꿈을 꾸었었다. 거동이 불편할 정도는 아니지만 체력이 몇 년 전과는 현저히 다르다. 아직 기차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는 일, 유럽의 소도시에 가서 한 달쯤 살아보기, 한국에 가서 한철을 보내기, 그리고 최근에는 싱가포르와 홍콩도 가보고 싶어 졌다.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두었더라면 – “당신은 당신이 살아온 증거로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129 페이지)
꼭 자서전은 아니더라도 지나온 삶을 글로 남기라고 권하고 싶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내가 그분들의 삶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 부모님은 사진을 많이 남겨 놓아 가끔씩 옛날 사진을 꺼내보며 그분들을 삶을 추측해 볼 뿐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영어로 자전적 이야기를 쓰고 있다. 손주들도 성인이 된 후에 이 글을 보고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세대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되기를 바란다. 이 또한 기회가 되면 책으로 묶을 작정이다.
치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 “연명 치료에 매달리다가 죽음을 앞두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희망 없는 연명 치료를 중단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희망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남아 있다.” (215 페이지)
이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불치의 병에 걸리면 전문가와 잘 상의해서 어느 선에서 연명 치료를 포기하고 남은 날들을 편안히 보낼 것인지 결정하고 싶다. 목숨을 연장하기 위한 연명 치료는 받고 싶지 않다.
지난봄 죽은 아내의 친구가 생각난다. 췌장암에 걸렸던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항암치료의 고통 속에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뜻이었는지, 차마 그녀를 그대로는 보낼 수 없다는 가족의 뜻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미 치료의 효과가 없는 투병은 환자에게 고통만 줄 뿐이다. 실제로 항암치료는 환자의 약해진 몸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한다. 열심히 살 때와 조용히 떠날 때를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할 듯싶다.
죽음, 무거운 주제지만 누구나 건너야 할 길이다. 자주는 말고, 가끔 한 번쯤은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주제다. 죽음을 이해하면, 삶이 더 소중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