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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이민 이야기

by 동쪽구름 2021. 1. 18.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직장에서는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출퇴근의 지옥철은 더더욱 참지 못한 나머지 회사를 그만두고, 말리는 가족과 남자 친구 등을 모두 뒤로하고 호주 떠난 20대 후반의 여성 ‘계나’의 이야기다.

 

호주에서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어학원을 수료하고, 대학원에 입학해 안정을 찾아가던 중, 그녀는 한국에 두고 온 남자 친구 ‘지명’에게서 사랑 고백을 받는다. 한국으로 돌아와 두 달 동안의 방학을 그와 함께 지내지만, 여전히 한국에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호주행 비행기를 탄다. 처음에는 한국에서의 삶이 싫어서 떠난 길이고, 두 번째는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다.

 

작가 장강명은 호주에서 공부를 하고 영주권을 딴 사람을 인터뷰하고, 호주 유학과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 등을 취재해서 사실에 가까운 내용으로 쓴 책이다.

 

“귀농이 어렵다지만 그건 사업으로 하려니까 힘든 거지. 하루에 20-30분 허리 굽히고 땅을 조금 갈아 준다거나 하는 일이 전부일 텐데 그게 그렇게 힘들까.” (15 페이지)

 

이건 작가가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텃밭을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 집에서는 아내가 매년 텃밭을 가꾸는데, 솔직히 돈 주고 사 먹는 것이 훨씬 편하고 저렴하다.

 

“우리 학교 나와서 KBS 나 ‘조선일보’ 이런 데 갈 수 있는 거야? 다 서울대 연고대 출신만 뽑는 거 아니야?” (55 페이지) “한국에서는 수도권 대학 나온 애들은 지방대 나온 애들 대접 안 해 주고, 인서울 대학 나온 애들은 수도권 대학 취급 안 해 주고,” (186 페이지)

 

출신 학교로 서열을 정하고 사람을 평가하는 한국인들의 정서는 이민사회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사업으로 성공해서 돈이 많은 사람 밑에서 일을 하고 그들 앞에서 굽신거리다가도, 자기네들끼리 모이면 출신 학교로 인격을 평가한다. 미주 한인사회에는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명문대학이라고 손꼽는 대학들이 CEO 양성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운영한다.

 

방학을 맞은 교수를 보내 비싼 수업료 받으며 4-6주 코스로 강의를 하고 수료증을 준다. 수료증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 연우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동대학의 총동창회는 이들에게서 후원금과 회비를 받고 슬쩍 끼워주기도 하지만, 자기들이 모이면 연우회는 아래로 내려다본다.

 

100페이지에는 ‘선데이 서울’과 연탄가스 이야기가 나온다. 70년대에 10대를 보낸 우리들이 접할 수 있던 가장 근접한 성인물이 바로 ‘선데이 서울’ 같은 주간지가 아니었던가. 겨울이면 연탄가스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도 했다. 한 번쯤은 연탄가스를 마셔 김치 국물이나 동치미 국물을 마신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102 페이지에는 과자에 붙은 개미를 떼어 내고 엄마가 그 과자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자란 외가에도 개미가 많았다. 국이나 찌개에 들어간 개미를 건저 버리고, 떡이나 과자에 붙은 개미를 털어내고 먹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미국이지만, 책에 나오는 호주의 이야기 중 상당 부분이 미국의 한인사회에서도 보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바람직한 이민은 합법적인 지위를 받아 이주하는 것이다. 그래야 법의 보호를 받으며 학교도 다니고 취업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이민을 하려면 연고나 자격 등의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학비자나 방문비자 또는 무비자로 입국을 해서 눌러앉을 생각을 한다. 체류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유학원에는 비싼 학비만 내고, 불법 취업을 한다. 대부분의 불법 취업은 불리한 조건이다. 최저임금도 보장되지 않고, 휴가나 보험 등의 혜택도 없고, 때로는 일하고 돈을 못 받는 경우도 있다.

 

한때 한국에서는 제주도에나 가서 살아볼까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미국이나 호주에 가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이민은 도피나 피난이 아니다. 이민은 삶의 연속이다. 한국에서 불행했던 사람은 미국이나 호주에 온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주인공 계나는 편안함이 보장된 한국에서의 삶을 버리고 호주로 돌아갔다. 자신이 찾는 행복이 그곳에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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