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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잊어버려도 좋은 나이입니다 인터넷 서점은 어디서나 편안하게 책을 골라 살 수 있다는 편리함은 있지만, 책을 집어 들고 펼쳐 이곳저곳을 읽어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한국은 책 내용의 소개나 서평 등이 많이 부족하다. 미국의 경우, 인터넷에서 쉽게 책의 내용이나 서평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 ‘적당히 잊어버려도 좋은 나이입니다’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내용의 책이었다. 70대 의사가 쓴 책이라고 해서 생의 후반부를 사는 노인이 쓴 다소 철학적 에세이집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내용은 나이 든 사람들에게 주는 현실적인 조언이다.  작가는 잊는 힘에 대한 글로 책을 시작한다. 생후 20개월 무렵 생모에게서 버림을 받고 입양이 되어 성장한 그는 70대에 마침내 생모의 불단(가정에 고인의 위패를 모셔 놓은 곳)에 .. 2025. 3. 27.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 지난 토요일, 교우 M 씨에게서 카톡이 왔다. “영화 감상 어떠실지요?” 메시지 아래에는 영화 ‘The Last Supper’의 사진이 있다. 나는 모르고 있던 영화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집 근처 노스릿지몰 옆 AMC 극장에서 상영한다. 일요일 1:30분 상영은 25% 조조할인까지 해 준다. 사순시기에 예수님의 죽음과 제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보는 것도 뜻있는 일 같아, 구역 단톡방에 초대의 글을 올렸다. 다들 일이 있어 못 간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내와 둘이 가기로 했다.  주일 아침 미사 후, M 씨에게 함께 가자고 하니, 대상포진 예방주사를 맞았는데 후유증이 있어 몸이 아프다고 한다. 여느 날처럼 구역 식구들과 맥다방에 가서 점심을 먹고 헤어져 집에 와 잠시 쉬었다가 아내와 둘이 극장에 가서 .. 2025. 3. 18.
유화 (2) 유화반 교수 아멜리아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내가 교실의 싱크대를 쓰지 못해 화장실 싱크를 사용한다는 것을 지난번 수업시간에 알게 되었다며, 미안하다고, 학장에게 이야기해서 시정하겠다는 내용이다.  미술 수업을 하는 아트빌딩 교실에는 한쪽 구석에 싱크대가 마련되어 있다. 학생들을 이곳에서 필요한 물을 떠다 쓰기도 하고, 붓이나 팔레트 등을 씻기도 한다. 싱크대 아래쪽이 막혀있어 나 같은 휠체어 장애인은 접근이 용이치 않다. 휠체어 앞부분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1년 반 동안 교실 옆 화장실 싱크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다. 여럿이 함께 쓰는 싱크대보다는 화장실에 가서 혼자 넓게 쓰는 것이 더 편하다.  그녀에게 답장을 썼다. 고맙다고.. 2025. 3. 15.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 시대가 변하면 소설이나 영화도 변한다. 요즘 나오는 범죄/미스터리 소설에는 기발한 플롯, 예상치 못한 반전 등이 등장한다. 어떤 때는 연달아 반전이 이어져 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 때도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친다.  40-50년대 영화는 분위기가 다르다. 영상이 흑백일 뿐만 아니라, 스토리의 페이스도 급하지 않다. 범죄 소설도 마찬가지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들이 그러하다. 문체나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유형이 문학적이다.  작가 ‘로런스 블록’의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는 바로 챈들러를 연상시키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전직 경찰인 주인공 ‘매슈 스커더’가 10년 전인 1975년에 벌어진 일들을 회고하는 행식이다. 그는 강도를 체포하는 과장에서 사고로 어린아이.. 2025. 3. 13.
무라카미 T 중고책방에서 책을 둘러보다가 하루키의 책을 발견하면 무조건 바구니에 담는다. 나는 그의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나 잡문도 좋아한다. 하루키에게는 일상이 모두 글의 소재가 되는 모양이다. 무엇 하나 그냥 버리는 법이 없다. ‘무라카미 T’도 그런 부류의 책이다.   그가 LP판을 좋아하며 기회가 되면 여행지에서 중고 레코드 가게에 들러 LP판을 사서 모은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티셔츠도 모은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작정을 하고 티셔츠를 모은 것은 아니고, 이곳저곳에서 홍보용 티셔츠를 받고, 마라톤 대회에 나가면 기념 티셔츠를 받고, 여행을 가면 갈아입을 옷으로 그 지역 티셔츠를 사고, 그러다 보니 서랍에 못다 넣고 상자에 담아 쌓아 놓게 되었다고 한다.  레코드 수집에 대한 .. 2025. 2. 21.
윈터 씨의 해빙기 은퇴를 앞둔 세무 공무원 윈터 씨는 꽉 막히고 편견 덩어리며 너무 깐깐해서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또한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밖에 없는 딸조차 그를 피한다. 이웃과도 교류가 없으며, 도통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화장품 회사 에이본의 뷰티 컨설턴트인 아내 소피아는 그와는 정반대로 타인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일을 즐기는 사람이다.  이야기는 그가 소피아가 원하는 샴페인 대신 주유소 편의점에서 탄산 와인을 사들고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샴페인을 사러 나갔던 아내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며 윈터 씨의 일상은 180도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아내가 없는 세상,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 그는 욕조 물에 헤어드라이어를 빠트려 감전사로 세상을 마감할 결심을 하고 욕조에 물을.. 2025.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