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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9

대화가 필요해 열흘 전쯤 갑자기 인터넷 속도가 느려졌다. 줌으로 이사회를 하다가 연결이 끊어지고, 아내는 유튜브가 안 열린다고 불평이다. 인터넷 회사에 전화를 하니 상담원은 상투적인 콜센터 직원의 대본을 말한다. 전원을 껐다, 30초 후에 다시 켜라. 연결선들을 모두 풀었다, 다시 연결하라.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며칠 후 다시 전화를 했다. 이번에도 전화를 받은 상담원은 비슷한 과정을 거친 후, 모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모뎀을 새로 보내주겠다고 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무래도 모뎀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주말 아침, 다시 전화를 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상담원은 잠시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10분 만에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갑자기 인터넷이 잘 터지니 묵은 체증이 사라진다. 고맙다고 하며 어떻게 다른 상.. 2022. 5. 26.
'장애인의 날'이 없는 나라 4월 20일, 한국은 ‘장애인의 날’이다. 이런저런 날이 수없이 많은 미국이지만 장애인의 날은 없다. 미국뿐 아니라 복지가 발달한 선진국 중 장애인의 날이 있는 국가는 한국, 일본, 중국 정도라고 한다. 한국에는 장애인의 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 화장실,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 장애인 학교, 장애인 센터, 장애인 시설 등 장애인 딱지가 붙은 것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장애인 복지는 후진국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전용”이 많다는 것은 얼핏 장애인을 배려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장애인을 배척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화장실 문을 크게 하고 입구에 턱을 없애면 장애인도 함께 쓸 수 있다. 공간이 넉넉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장애인도 함께 탈 수 있다. 장애인과 함께 쓰는 것이 거.. 2022. 4. 21.
긴 여정의 간이역 ‘대학’ 한인들은 또래를 만나면 학번을 묻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곤 한다. 학번은 입학연도임으로 이를 알면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 동급생이라도 학번이 앞이면 선배 취급을 받는다. 미국에서는 “Class of”에 졸업연도를 붙여 “Class of 2022”처럼 사용한다. 그리고 이 “Class of” 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든 졸업에 적용된다. 한국에서 대학 입학이 12년 학업의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이며 앞으로 펼쳐질 사회생활의 방향을 결정하는 이정표라면, 미국인들의 이정표는 고등학교 졸업일 것이다. 매그넷 같은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고등학교까지는 집 근처의 학교를 다니지만, 대학은 전국 각지로 진학하기 때문에 어린 시절 친구들과는 이별을 하게 된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의 대학 진학률은 4% 였고, 70.. 2022. 2. 26.
떠날 준비 지난 연말의 일이다. 책상을 정리하던 아내가 수년 전 사두었던 묘지 계약서가 들어있는 폴더를 발견했다. 안에 보니 명함도 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난 김에 전화를 했다. 마침 장례보험의 무이자 할부판매가 곧 끝이 난다며 올해가 지나기 전에 오라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처음 겪는 일이라 난감했다. 하지만 이미 장지와 장례보험이 마련되어 있어, 전화를 하니 곧 사람이 와서 정중히 모시고 갔다. 상을 당했지만 아들인 내가 특별히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앨범을 꺼내 사진을 골라 장례식에 쓸 슬라이드를 만들고, 성당에 연락해 연도와 장례미사를 준비하는 정도가 내게 주어진 일이었다. 어머니 때도 거의 비슷한 과정으로 장례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가는 길을 미리 준비하는 일.. 2022. 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