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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9

꽃피는 봄에 그놈들이 돌아왔다. 음력 설이 빨라 금년에는 봄이 일찍 올 것을 예상했는데, 역시 절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음력설이 지나자 바로 그놈들이 얼굴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놈들이란 우리 집 뒷동산에 피는 금잔화들이다. 우리 집은 뒤로는 집들이 없이 나지막한 언덕이며 나는 이 언덕을 뒷동산이라고 부른다. 그곳에는 이런저런 이름 모르는 풀과 옆집에서 슬금슬금 넘어온 선인장, 그리고 야생 해바라기가 자란다. 금잔화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10년쯤 전의 일이다. 어느 해 봄, 느닷없이 언덕 윗자락에 꽃이 피었다. 새들이 날아온 씨앗이 싹을 튼 것인지, 아니면 언덕 위 어느 집에서 내버린 씨앗인지 알 수 없다. 한번 발을 들여놓더니 매년 옆으로 아래로 조금씩 영토를 넓혀 이제는 아래위로 가득하다. 몇 년 전 비가 많.. 2023. 2. 11.
남존여비 며칠 전 장애인 전용차량인 access 밴을 타고 외출을 하며 있었던 일이다. 그날 운전기사는 중년의 라틴계 여성이었다. 차에는 승객이 한 사람 타고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나를 데리러 오기 전에 시작했던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회사로 출근하는 길이라는 여승객은 첫 번째 남편이 죽고 재혼을 했었는데, 지금 이혼 수속 중이었다. 운전기사가 그녀에게 죽은 남편을 못 잊고 자꾸 비교가 되어 헤어지는 모양이라고 하니 승객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운전기사는 자기는 남편이 죽으면 결코 재혼은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며 하는 말이 나이가 들어가니 점점 더 자신감이 생긴단다. 아마도 여성 호르몬이 줄어 상대적으로 남성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물론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 2022. 9. 16.
밤이 선생이다 ‘밤이 선생이다’는 불문학자이며 문학평론가인 ‘황현산’ 선생의 첫 산문집이다. 한겨레신문과 국민일보에 실었던 칼럼들, 그리고 80-90년대에 썼던 글들을 함께 모아 엮은 책이다. 20-40년쯤 쓴 글들이다. 그래서 시기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다소 맞지 않는 글들도 있긴 하지만 나는 재미있게 읽었다. 읽는 이의 마음을 건드리는 감성 에세이가 아닌 작가의 의식과 주관을 강조하는 글들이다. 읽으며 무릎을 치며 동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의 글은 아무래도 고집스럽고 딱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울 것도, 생각도 많아지는 글들이다. 1부에서는 군부독재 시절 그리고 그 이후 시절과 그 무렵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들을 이야기한다. 2부에는 문학과 문화계의 이야기.. 2022. 9. 2.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작가 정여울의 심리테라피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를 읽었다. 책에서 진정한 성숙을 위해서는 나의 “바람직한 측면뿐 아니라 부끄러운 측면까지 전체성으로 보듬”어야 한다는 구절을 접하게 되었다.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내면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대면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써보는 것이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을” 써보고, 그다음에는 “그럼에도 나 자신이 기특했던 순간들”을 써보고, 마지막으로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쓴다. 순서가 중요하다. 그래야 뒤로 갈수록 더 나은, 더 깊은 나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내가 싫은 점, 후회되는 점, 고치고 싶은 점을 먼.. 2022.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