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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6

추리 열매 어머니의 심부름을 가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날은 덥고 길은 멀어 보였다. 정숙이네 과수원을 지나자니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추리 나무 가지가 더위에 늘어져 팔을 올리면 손에 닿을 듯싶었다. 아이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얼른 하나 따서 입어 넣었다. 아삭하고 깨무니, 단물이 입가로 흐른다. 꿀을 발라 놓은 듯 달고, 꽃보다 진한 향기가 입안에 퍼진다. 다 먹기도 전에 두어 개를 더 딴다. “너 현숙이지? 이리 와 봐.” 들켰구나.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정숙이 고모가 부른다. “어디 심부름 가니? 덥겠다. 너 이 추리 좀 먹어 볼래?” 정숙이 고모가 나무에서 추리를 하나 따서 내민다. 아이는 아무 말없이 받아 든다. “우리 집에 나무에서 떨어진 것이 좀 있는데, 가.. 2020. 9. 8.
난 여름에도 반바지를 입지 않는다 무더운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밖에 나가보면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 금년 여름에도 변함없이 난 긴바지를 입고 지낸다. 내 옷장에는 아예 반바지가 없다. 내 나이 열두, 세 살 때쯤의 일이 아닌가 싶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여름이 되면 짧은 바지를 입고 지냈다. 아버지의 심기가 안 좋았었는지 아니면 평소부터 마음에 담아두고 계시던 생각이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날도 나는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형제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아마도 집에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꾸짖는 투로 왜 아이에게 반바지를 입혀 보기 흉한 다리를 내놓고 있느냐며 긴바지를 입히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날 바로 긴바지로 갈아있었는.. 2020.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