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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칼럼4

오해 오해는 크리스마스 며칠 전 우리 집 문 앞에 놓여 있던 레몬 한 봉지로 시작되었다. 외출에서 돌아오니 아마존 배달 상자 위에 갓 딴 것 같은 싱싱한 레몬이 한 봉지 놓여 있었다. 잠시 후, 아내와 나는 2년 전 이사 온 옆집 부부가 준 것이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우리 집 왼쪽 옆집에는 ‘와니타’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그 집 뒷마당에는 커다란 레몬나무가 있어 매년 몇 차례 레몬을 얻어먹곤 했었다. 아내는 그 레몬을 썰어 설탕에 재워 놓았다가 레모네이드를 만들기도 하고, 즙을 내어 화장수를 만들어 얼굴에 바르기도 했다. 와니타 할머니와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선물도 주고받았다. 2년 전, 할머니는 집을 팔고 타주에 사는 딸네 곁으로 갔고, 그 집에는 중년의 부부가 이사를 왔다. 그동안 오며 가며 인사만.. 2024. 1. 20.
새 친구 ‘샤키라’ 바닥에 앉아 생활을 하던 온돌방 시절, 다들 매일 방청소를 하고 지냈다.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치우고 방을 쓸고 닦은 후 그 자리에서 아침밥을 먹었고, 저녁이면 다시 바닥을 물걸레로 닦은 후 자리를 펴고 잠자리에 들었다. 미국에 와서 침대 생활을 하니 청소를 매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요즘은 나무나 타일로 바닥을 바꾼 집들이 많아졌지만, 80년대에는 대부분 카펫이 깔려 있었다. 주말에 한번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하며 지냈다. 9년 전, 조카들이 우리와 함께 살기 시작하며 용돈을 주고 바닥 청소를 그놈들에게 시키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번갈아 가며 한 사람은 진공청소기를 다른 한 사람은 물걸레를 들고 청소를 했다. 이제 가을이면 작은놈이 대학에 진학하여 집을 떠나게 된다. 청소부가 그만두기 전에 대체 인력.. 2023. 7. 22.
금성에서 온 그녀 나이가 드니 아침에 일찍 눈을 뜬다. 사무실로 출근을 하지 않으니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은 잠시 침대에 누워 인터넷으로 신문을 본다. 며칠 전 아침의 일이다. 아내가 동화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를 아느냐고 묻는다. 순간, “무슨 의도로 그걸 묻지?”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렇게 의심과 편견을 가지고 시작한 대화가 아내의 의도대로 진행될 리가 없다. 결국 아내는 나하고는 대화가 안 된다는 말로 하루를 시작했다. 얼마 전에도 웰다잉(well dying)을 놓고 시작한 대화가 삼천포로 빠져 어색한 아침을 맞은 적이 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나는 늘 누구나 공감할만한 옳은 말을 하지만 대화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답이 필요한 사람은 전문가를 찾아가지 대화 상대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다 보.. 2022. 8. 17.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왔다. 봄은 꽃으로 시작한다. 매일 다니는 길에도 여기저기 꽃잔치가 벌어졌다. 우리 집 뒷동산은 작년 가을 마른풀들을 모두 제거했더니, 새로 자란 풀 사이로 들꽃이 한창이다. 노란 꽃, 흰꽃, 보라색 꽃들이 키재기를 하며 매일 피어난다. 복숭아나무의 꽃은 이미 지고 벌써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감나무에는 새로 잎에 빼곡히 났는데,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얼마 후에는 꽃도 필 것이다. 5년 일기를 쓴 지 2년이 되었다. 작년 이맘때 쓴 글을 보니, 온통 코로나 예방접종 이야기다. 차례가 빨리 오지 않아 발을 구르고, 막상 자격이 되었지만 예약을 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작년 3월 일기에도 비와 꽃과 봄이 함께하는 일상이 들어 있었다. 1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우리가 다.. 2022.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