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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9

유화 (2) 유화반 교수 아멜리아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내가 교실의 싱크대를 쓰지 못해 화장실 싱크를 사용한다는 것을 지난번 수업시간에 알게 되었다며, 미안하다고, 학장에게 이야기해서 시정하겠다는 내용이다.  미술 수업을 하는 아트빌딩 교실에는 한쪽 구석에 싱크대가 마련되어 있다. 학생들을 이곳에서 필요한 물을 떠다 쓰기도 하고, 붓이나 팔레트 등을 씻기도 한다. 싱크대 아래쪽이 막혀있어 나 같은 휠체어 장애인은 접근이 용이치 않다. 휠체어 앞부분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1년 반 동안 교실 옆 화장실 싱크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다. 여럿이 함께 쓰는 싱크대보다는 화장실에 가서 혼자 넓게 쓰는 것이 더 편하다.  그녀에게 답장을 썼다. 고맙다고.. 2025. 3. 15.
아크릴화 II (4) 세 번째 그림 과제는 음악에서 받은 영감을 캔버스에 그리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 좋아하는 윌리 넬슨이 부른 ‘Angel Flying Too Close to the Ground’를 선택했다.  천사의 도시인 LA에는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건물 벽이나 담장에 천사의 날개를 그려놓은 벽화가 무수히 많다. 대개는 천사 없이 날개만 그려져 있어 사람들이 가운데 서면 날개 달린 천사가 되는 것이다.  그림은 보통 2주에 걸쳐 마치게 되는데, 이번에는 추수감사절에 수업이 없어, 3주가 주어졌다. 첫 주에 그림을 거의 끝내고 학교에 가지고 가 교수에게 보여주니 날개를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집에서 아내가 보고 고치라고 했던 것이다. 고치고 싶긴 한데 고칠 엄두도 용기도 없다고 하니 자기가 도와주겠다며 고치자고 한다.. 2024. 12. 5.
아크릴화 II (2) 봄보다 가을에 시간이 빨리 가는 건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더 들었기 때문인지, 이번 학기는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절반이 지나갔다.  비록 한 학기에 한 과목씩이긴 하지만, 미술공부를 시작한 지 2년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리기가 수월해질 줄 알았는데, 점점 더 어려워진다. 과제를 끝내고 나면 다음 과제물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과제를 받고 나면 머리는 온통 그림 생각뿐이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정신건강에 좋다고 스스로에게 타이르지만, 이 나이에 왜 사서 고생을 하나 싶어 수강을 드롭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중간고사로 받은 과제는 상자 안에 그리고자 하는 물건을 넣고 입체감을 살린 정물화를 그리는 것이었다.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실기는 아직도 많이 부족했다. 원근법.. 2024. 10. 19.
아크릴화 I (5) 2주에 걸쳐 교수가 가르쳐준 다양한 아크릴 기법을 사용하여 표현주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과제였다. 주제는 따로 없고, 다른 화가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그리면 된다.  나는 지난 학기 수채화 시간에 ‘오병이어’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려 교수에게서 크게 칭찬을 받았었다. 외국인들에게는 낯선 한글이나 한자가 들어가면 추상화 같은 느낌을 주는 모양이다. 같은 주제로 아크릴화를 그려보기로 했다.  막상 다 그려놓고 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채화의 경우는 종이에 물감을 넉넉히 올리고 물을 부어 흘리는 것만으로도 멋진 배경이 만들어지는데, 아크릴화는 물감을 선택해 붓으로 찍어 일일이 칠하며 캔버스를 채워야 한다.  우선 배경에 너무 강한 색을 깔았고, 캔버스가 커 남은 공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도무지 감.. 2024. 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