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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야기

내가 만난 동성애자 이야기

by 동쪽구름 2020. 9. 7.

내가 알고 지냈던 최초의 동성 커플은 우리 옆집에 살던 남자들이었다. 아직 동성애자들에게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시절이라 그랬던 모양이다. 나무판자로 높게 담을 세우고, 창문에는 늘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주말이면 일주일치 장을 본 듯 차에서 그로서리 백을 내리는 모습을 본 것이 고작이다. 노스릿지 지진이 났을 때, 혹시 가스관이 터졌을지 모르니 밸브를 잠가주겠다고 공구를 들고 나온 그와 처음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년 후, 내가 이사를 준비하며 헌 가구와 쓰레기들을 내놓는 것을 보고 그가 다가왔다. 함께 살던 파트너가 죽었다고 한다. 그는 에이즈에 걸린 파트너의 곁을 지키며 살다가 그가 죽자 집을 상속받았다고 한다. 집을 팔고 곧 이사를 갈 것이라고 했다. 바로 옆집에 에이즈 환자가 살고 있었다는 사실에 다소 섬뜩한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래리’의 변화를 처음 목격한 것은 샌디에고에서 열렸던 관리직원들의 연수 때였다. 그는 남자 중에서도 제법 체격이 큰 편에 속했다. 여성스러운 디자인의 바지, 무색의 매니큐어를 바른 긴 손톱, 조근조근한 말소리 등이 평소의 모습과 달라 보였다. 보직을 바꾸고 나서 이미지 관리 차원이겠거니 하고 별생각 없이 넘어갔다. 

 

얼마 후 그가 여장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리고 다음 해 연수 때, 그는 가발을 쓰고 화장을 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동성애자 차별금지가 쟁점화되던 시기라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은 그의 선택을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성전환 수술은 건강보험에서는 잘 커버해 주지 않는다. 성전환이 꼭 필요한 경우에만 선별적으로 비용을 부담하고 있었다. 때마침 내가 근무하던 주정부 산재기금에서는  ‘카이저’ 건강보험과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 사업을 추진하는 부서의 장이 바로 ‘래리’였다. 얼마 후 그는 수술을 마치고 여자가 되었다. 이름은 이니셜이 같은 'L'인 ‘리사’로 바꾸었다.

 

그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었으며 이혼한 아내가 있었다. 고등학교와 대학에 다니던 그의 자녀들에게는 하루아침에 엄마가 두 명이 생긴 셈이다. 자녀들은 그를 ‘아빠,’ 또는 ‘엄마’라 부르지 않고 ‘리사’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렇게 ‘래리’는 체격이 우람한 여자 ‘리사’가 되었다. 여자가 되었으니 남자를 사귈 것이라는 우리들의 짐작과 달리 그녀는 여자와 살고 있다. 

 

지금은 은퇴를 하여 나이 든 동성애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팜스프링스’ 지역에 살고 있다. 구글에 ‘Lisa Middleton’이라고 치면, 그녀의 사진을 볼 수 있다.

 

나는 게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나의 생각을 다소 바꾸게 만든 사람이 ‘키이스 킨케이드’라는 매니저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평생을 게이로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늘 깔끔한 외모에 언행이 바르고 모든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했다. 회사에서도 신망을 받아 후에 지역사무소장까지 되었다. 모든 이들의 사정을 들어주고 만족시켜 주려다 보니 그 밑에서 일하는 관리직원들이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불만을 가진 이들은 별로 없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성향 때문에 지나치게 남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었고, 작은 몸매에 살도 없었다. 그에게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파트너가 있었다. 나름 스트레스 많은 인생이었을 것이다.

 

내가 리사와 키이스를 알고 지내는 동안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동성애자의 파트너를 배우자로 인정하여 보험과 세제상의 혜택을 주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마침내 동성결혼까지 인정하게 되었다. 리사와 키이스는 동성 결혼을 이루었다. 나는 이들도 나와 비슷한 감성을 지녔고, 같은 고민을 하며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양성과 선택의 자유가 많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요즘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바로 정체성과 선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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