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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야기

명문대는 부모의 욕심

by 동쪽구름 2020. 10. 3.

가을이다. 해는 남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해질 녘이면 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마당의 돌배나무는 어느새 단풍이 물들었다. 코로나로 봄을 시작했는데, 가을이 되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세월은 흘러 아이들은 한 학년씩 올라갔고, 내년에 대학에 진학하는 12학년은 곧 원서를 제출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한인 부모들의 교육열이 대단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친구, 친지 사이에서도 자녀의 대학 진학을 놓고 은근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5,000 -10,000 씩 주고 진학 컨설팅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SAT와 ACT 시험공부는 물론 원서와 에세이 작성까지 도와주며 한인들이 선호하는 명문대 입학을 보장해 준다. 

 

실은 나도 이런 부모들이 빠지는 함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둘째 아이가 대학에 진학할 때, UC 산타바바라와 집 근처 주립대학 CSUN, 두 곳에서 입학허가를 받았다. 아이는 친구들이 진학하는 CSUN에 가고 싶어 했는데, 내 욕심은 달랐다. 그래도 UC 정도는 가야 하지 않겠나. 결국 아이는 한 학기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돌아왔다.

 

명문대를 나오면 그만큼 성공하기가 쉽다는 공식은 출신학교가 출세를 좌우하던 한국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미국에서도 명문가의 자녀들이 명문대에 진학하여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본다. 그러니 미국 부모들도 성적이 나쁜 자녀들을 위해 입시비리를 저지르지 않았겠는가.

 

남이 써준 에세이와 족집게 과외로 얻은 성적으로 명문대학에 들어간들 계속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도리어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술이나 약물에 손을 대거나 심한 경우에는 정신질환으로 이어져 학업을 중단하게 된다. 

 

미국은 학연으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사회가 아니다. 졸업장에 적힌 대학 이름보다는 무엇을 공부하였으며, 자신의 전공을 어떻게 살려 사회에 진출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내가 30여 년 동안 일했던 직장에는 고졸학력의 지역사무소장도 있었고, 주립대학 출신 부사장도 있다. 나는 CSUN 4학년에 휴학을 해서 졸업은 하지 못했다. 내 부하 직원 중에는 UCLA 대학원을 나온 사람도 있었고, UC 버클리와 스탠퍼드 출신도 있었다. 

 

미국의 대학제도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 힘에 달리는 대학에 진학하여 중퇴를 하거나 겨우 낙제만 면하고 졸업을 하느니 차라리 2년제 community college에 진학하여 수월하게 높은 GPA를 받아 원하는 대학에 3학년 편입을 하는 방법도 있다. 어치피 대학은 입학보다는 졸업이 중요하다.

 

내가 아는 지인의 딸은 지난여름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육군에 입대를 했다. 고졸로 취업전선에 뛰어드느니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군대를 택한 것이다. 아마도 군대를 제대할 쯤에는 철이 들어 'GI Bill'로 (제대한 군인에게 주는 학비지원) 돈 걱정하지 않으며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지인은 이런 딸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체면보다는 자녀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를 지켜보며 응원할 수 있는 부모들의 성숙함이 필요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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