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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기생충 - 우리들의 이야기

by 동쪽구름 2020. 8. 6.

며칠 전의 일이다. 아내가 자동차 뒷 좌석에 떨어져 있었다며 USB를 가지고 왔다. 전산실 K군이 복사해 준 영화 ‘#기생충’이 들어있는 USB 다. 2달째 가방에서 꺼내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인터넷 사이트를 가르쳐 주었더라면 서둘러 보았을 텐데,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도리어 미루고 보지 않게 된다.

 

신문을 보니 아카데미 상 시상을 앞두고 ‘기생충’의 상영관이 늘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우리 동네 미국 극장 한 곳에서 저녁 5:20분에 상영을 한다. 토요일 오후 ‘기생충’을 보러 갔다.

 

숨겨진 우리들의 모습이 녹아 있는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이 넷이나 죽었는데 악당은 없다. 아니, 이 영화에는 처음부터 착한 사람도 없고 나쁜 사람도 없었다. 이선균과 조여정은 운전기사나 가정부에게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해고해 버린다. 그들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었더라면 오해는 풀렸을 것이고,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린 살아가며 자주 혼자 판단하고 남의 운명을 결정해 버리곤 한다.

 

영화에서는 냄새가 계층을 가르는 은유로 쓰인다. 그렇다. 사람들에게는 냄새가 있다. 어디 사람들뿐이랴. 차에도 냄새가 있고, 집에도 냄새가 있다. 어머니 집에서 온 물건에서는 부모님의 냄새가 나곤 했었다.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온 다음날은 차에서 아버지 냄새가 나곤 했다. 아내가 한국에 가서 2주 머무는 동안, 나는 그녀가 벗어놓고 간 잠옷의 냄새를 맡으며 그녀를 그리워하곤 했었다.

 

서양사람들에게서는 누린내가 나고, 흑인들은 하도 향수를 많이 뿌리고 다녀 그들의 냄새를 알 수 없다. 외할머니에게는 풀 먹여 다린 광목 앞치마 냄새 있었고, 잠자는 내 얼굴에 수염 난 얼굴을 비비던 할아버지에게서는 시큼한 술 냄새가 났다.

 

공문서 위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잘못된 생각이 내게 유리하게 작용할 때, 나는 그들의 생각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나는 2년제인 LAVC를 졸업했지만, 주립대학인 CSUN 은 졸업하지 않았다. 이력서에는 정확하게 LAVC 졸업, CSUN 수학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내가 주립대학에 다녔다는 사실을 졸업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잘못을 바로 잡지 않았다.

 

최우식은 자신이 가정교사로 들어간 것으로 만족했어야 한다. 아니 그의 동생인 박소담까지가 마지노 선이었다.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박소담이 팬티를 벗는 것으로 그들은 선을 넘기 시작했다. 이정은을 모함해 몰아내며 송강호의 일가족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이선균은 선을 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에게 “선을 넘지 않는다” 는 말은 아마도 “정도를 넘지 않는다” 또는 “분수를 안다”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문제는 가진 자가 임의대로 선을 그어 놓았다는 점이다. 그 선을 넘을 수 없는 이들은 비가 오면 하수구가 역류하는 지하방에서 살 수밖에 없다.

 

술을 먹고 골목길에서 오줌을 싸는 이들은 지린내가 진동하는 그 벽이 누군가의 거실 창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알고는 그 자리에 오줌을 쌀 수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지하방 변기가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점을 지적했더니, 아내는 그런 지하방에 살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변기가 하수도보다 아래에 있으면 물이 빠지지 않으니 높이 다는 것이라고 한다. 하수도보다 위치가 낮은 지하방에서는 물을 쓰면 펌프를 돌려 오물을 뺀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는 날은 하수구가 역류를 한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최우식은 돈을 많이 벌어 대저택의 지하에 숨어 있는 송강호와의 재회를 꿈꾼다. 나는 그가 아버지와 재회했기를 바란다. 아마도 그는 아버지를 다시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영화 중간 여러 차례 웃음소리가 들렸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영화임에도 여기저기 숨어 있는 코믹한 대사/연기 탓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일주일 후로 다가왔다. 과연 ‘기생충’이 선전할 수 있을까? 영어 자막이라는 언어의 장벽과 한국 영화라는 편견을 이겨낼 수 있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한편 보았다.

 

(아카데미 시상식 전에 썼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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