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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아메리칸 더트 (American Dirt)

by 동쪽구름 2021. 3. 4.

제닌 커민스의 베스트셀러 장편소설 '아메리칸 더트'(American Dirt)를 읽었다.

 

멕시코 남서부의 아름다운 휴양 도시 아카풀코의 한 주택가, 열다섯 살 소녀의 생일 파티에 무장 괴한들이 나타나 총을 쏘아댄다. 뒷마당에 모여있던 일가친척 16명이 현장에서 주고, ‘리디아’와 ‘루카’만 겨우 살아남는다. 리디아는 결코 이곳에서는 카르텔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지역 공무원, 경찰, 신문기자 중에도 그들에게 협조하는 이들 투성이다. 가족의 시신을 버려둔 채, 리디아는 아들과 함께 탈출의 길에 오른다.

 

그녀는 작은 책방을 운영하며 신문기자인 남편 ‘세바스티안,’ 8살 된 아들 ‘루카’와 편안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책방을 찾았던 남자 ‘하비어’어와 친해지게 되는데 그는 그 지역 카르텔의 두목이었다. 

 

멕시코의 카르텔은 그 규모나 잔혹성에 있어 한국의 조폭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들은 한 지역을 장악하고, 상인들로부터는 보호 명목으로 돈을 빼앗고, 온갖 부정과 비리에 개입하며, 마약을 제조해 미국 등으로 밀반출한다. 공무원, 경찰, 군인, 하물며 정치인들 중에도 그들에게 협조하는 이들이 섞여있다.

 

반대하는 세력은 잔인한 보복을 받게 된다. 한 번에 수십 명씩 처형해서 시신을 불태우거나 큰 웅덩이에 묻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마침 내가 이 글을 쓰던 날 아침, LA타임스에는 멕시코에서 벌어지는 이런 대량학살에 대한 특집기사가 실렸다. 지난 15년 동안, 멕시코에서는 8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책방의 손님이며 자신과 같은 독서취향을 가진 하비어와 친하게 지내던 리디아는 세바스티안을 통해 그가 카르텔의 두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바스티안은 카르텔을 추적, 취재하며 작성한 기사를 통해 그들의 비리를 세상에 폭로하게 된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세바스티안의 조카 생일에 모인 일가친척이 몰살을 당한 것이다. 

 

아들과 욕실에 숨어 간신히 목숨을 건진 리디아는 그들의 손길을 피해 미국으로 밀입국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녀는 카르텔이 조직원들과 그들의 협조자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배포해서 찾고 있을 것 같아 버스나 비행기 등을 타지 못한다. 결국 중남미에서 멕시코를 통해 도보나 화물기차에 올라 미국으로 향하는 난민의 대열에 끼여 들기로 한다. 

 

매년 4백만 명에 달하는 중남미 불법 이민자들이 멕시코를 통해 미국 국경에 이른다. 이들 중 극히 일부만이 난민의 지위를 부여받아 입국이 허용된다. 

 

리디아는 남편의 대학 동창인 ‘칼로스’ 부부의 도움으로 단기 선교사업을 마치고 귀국하는 미국 청년 선교단의 밴 차로 멕시코 시티까지 온다. 운 좋게 난민 여행의 요령에 익숙한 온두라스에서 온 자매 ‘솔리다드’와 ‘레베카’를 만나 함께 화물차에 오른다. 

 

기차가 서는 역 주변에는 담장과 경비가 있어 기차에 오를 수 없고, 기차가 서행하는 구간에서 올라타거나 뛰어내려야 한다. 이들은 오전에 화물차에 오르고 저녁이 되면 내려서 노숙을 한다. 조금 큰 도시에는 난민들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센터가 있어 그곳에서 묵기도 한다. 난민들이 지나가는 길목에는 도처에 악의 손길이 기다리고 있다. 여자들은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하고, 돈을 지닌 사람들은 그 돈을 빼앗기기도 한다. 

 

리디아의 일행도 이런 일을 겪게 된다. 난민들이 기차에서 내리는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민국 복장을 한 무리들에게 잡히게 된다. 그들은 젊고 예쁜 두 자매를 따로 데리고 가고, 리디아는 허름한 창고로 보내진다. 이곳에서 부패한 공무원들은 이들에게서 몸값을 요구한다. 몸값을 지불한 사람은 풀어주고, 아니면 가족에게 연락해서 돈을 보내게 한다. 리디아는 가지고 있던 돈의 절반을 주고 아들과 풀려나지만, 때마침 돌아온 두 자매를 구하기 위해 남은 돈을 털어준다. 

 

국경에 도착한 이들은 ‘카요티’라 불리는 밀입국 업자에게 돈을 주고 미국 국경을 넘게 된다. 두 자매는 미국에 살고 있던 사촌이 돈을 보내 주었고, 리디아는 죽은 어머니의 통장에 들어 있던 돈을 찾아 대금을 지급한다.

 

사람들이 쉽게 지나다닐 수 있는 지역에는 장벽과 이민국 단속이 있다. 이들은 비교적 단속이 허술한 험난한 사막을 건너게 된다. 이민국 단속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낮에는 그늘에 숨어 있다가, 캄캄한 밤에 불빛도 없이 앞사람만 따라 길을 간다. 일행을 놓치게 되거나 발이라도 삐끗하는 날이면 사막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소설이지만 다큐멘터리 같은 책이다. 미주의 한인업소에서 일하는 많은 멕시코 또는 중남미 난민 중에는 이렇게 카요티를 따라 밀입국한 사람들이 많다. 내 6촌 동생의 아내도 30여 년 전 어린 아들과 함께 이렇게 미국으로 왔다.

 

‘Dirt’란 ‘흙,’ 여기서는 ‘땅’을 말한다. 불법 이민자들이 생명을 걸고 넘어오려는 곳, 미국 땅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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