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의 장편소설 ‘스토너’는 1965년에 출간되었지만, 50년이 지난 후에야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책이라고 한다.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19세기 말 미조리의 가난한 농가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장학금을 받으며 농업을 배울 수 있다는 말에 그를 미조리 대학에 보내지만, 그는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영문학에 매료되어 영문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는 대학원 과정까지 마친 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고,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많은 젊은이들이 입대를 하지만 그는 참전하지 않는다. 스토너는 전쟁을 피하고자 함이 아니고, 자기가 좋아하는 영어를 계속 가르치기 위해서다. 그와 친했던 친구 두 명은 입대를 하여, 한 명은 전사하고 다른 한 명은 돌아와 훗날 학장이 된다.
종전 후, 스토너는 은행가의 딸인 ‘이디스’라는 젊은 여성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되지만, 가난한 농부인 스토너의 부모는 그들과 더 멀어지게 된다. 그의 결혼은 초반부터 불행에 빠진다. 부부는 각 방을 쓰며 한 지붕 동거의 삶을 산다. 3년 후, 이디스는 갑자기 성에 눈을 뜬 듯 잠시 뜨거워지지만, 곧 임신을 해서 딸 ‘그레이스’를 낳으며 다시 전과 같이 차가워진다. 이디스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그 이유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스토너는 학자이며 교수로서는 훌륭하지만, 우직하며 융통성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다. 장애인 대학원생의 학점을 놓고 담당교수인 ‘로맥스’와 다툰 일로 20여 년 동안 학교에서 엄청난 불이익을 당한다. 만약 그때 그가 양보를 했더라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40대가 된 스토너는 젊은 여성 조교 ‘캐서린 드리스콜’을 통해 사랑을 알게 된다. 아내인 이디스는 이 사실을 알고도 개의치 않는다. 중년의 남자가 그럴 수도 있다는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이 소식이 로맥스의 귀에 들어가며 결국 캐서린이 학교를 떠나는 것으로 그의 사랑은 끝이 난다.
한편 부부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보고 자란 딸 그레이스는 문란한 사생활 끝에 대학에 입학한 후 임신을 한다. 그녀는 결혼을 원치 않지만 이디스가 나서서 결혼을 시키고, 남편은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2차 세계대전에 나가 전사한다. 그레이스는 시집에 들어가 아이를 키우지만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스토너가 은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로맥스는 그를 은퇴시키려고 하지만, 고집스러운 스토너는 아직 남아있는 기한을 다 채우겠다고 버틴다. 하지만 그에게는 불치의 암이 찾아오고, 서둘러 은퇴를 한 그는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자기가 선택한 삶을 묵묵히 짊어지고 살아가는 한 인간의 일생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다. 왜 작가는 불의하고 약싹 빠른 이들이 우직한 스토너를 끝까지 괴롭히도록 놓아두는가 하고 묻고 싶을 지경이다. 책을 읽는 내내 애잔함과 슬픔이 함께 한다. 단 한 페이지도 유쾌하거니 통쾌하지 않다.
하지만 결국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스토너를 불행한 결혼 생활로 이끈 이디스나, 그를 가슴 아프게 한 딸 그레이스나, 교단에서의 생활을 그토록 힘들게 만들었던 로맥스 교수도 모두 자신의 삶을 산 것이지 결코 스토너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의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에 따라 나이를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장면도 있다. 책에서는 40대의 스토너를 노인의 반열에 놓고 있다. 아마도 책의 무대인 30-40년대에는 40대면 벌써 노인 행세를 했던 모양이다.
스토너가 죽었을 무렵의 나이가 지금 내 나이쯤 된다. 그래서 그런지 투병과 죽음을 앞둔 그의 모습이 남의 일 같이 보이지 않았다. 젊은 독자들에게는 조금 지루할 수도 있는 책이다. 하지만 과연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삶이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