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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죽음 코로나로 시작한 칩거도 이제 2년 차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책과 영화를 가까이하게 된다. ‘수잔 서랜든’ 주연의 영화 ‘완벽한 가족’(Blackbird)를 보았다. 루게릭병에 걸려 이미 한쪽 팔은 쓸 수가 없고 다리도 불편한 중년 여성 ‘릴리’가 더 이상 병세가 악화되기 전에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하고 두 딸과 그들의 가족, 절친을 집으로 불러 때 이른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녀가 큰딸의 아들인 손자와 나누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손자가 “할머니, 어른이 되어 중요한 순간에 유용하게 쓸만한 삶의 지혜 같은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라고 말하자, 그녀가 답한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뭐 대단한 통찰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척 하지만, 그런 건 없어. 생은 그냥 살아보아야 .. 2021. 3. 10.
죽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는 시크한 독거 작가 ‘사노 요코’의 마지막 에세이 집이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그녀가 호스피스 병원에서 경험한 이야기며 그녀의 죽음 철학이 들어 있는 책이다. 책에는 그녀가 신경과 의사인 ‘히라이’ 박사와 나눈 대화가 한 챕터를 이루고 있는데, 마치 선문답 같은 이야기들이다. 호흡이 멎고 심장이 멈추어도 머리카락은 자란다. 몸의 세포들 중에는 사후 24시간 정도 살아있는 것들도 있다고 한다. 사노는 마음이 가슴 부근에 있는 것 같다고 하지만, 히라이는 우리의 마음은 대뇌피질에 존재한다고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소뇌가 없으면 몸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죽지는 않으며, 뇌간을 모두 들어내면 호흡을 할 수 없지만 인공호흡기를 연결하면 계속 살 수 있다.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숨을 쉬고, 혈압과.. 2020. 8. 2.
결국 모든 것은 이별한다 미영씨가 죽었다. 췌장암 진단을 받은 지 4개월 만이다. 이렇게 빨리, 이렇게 허무하게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녀는 아내의 절친이다. 고향 친구며 동창이다. 시험관 시술로 낳은 쌍둥이 두 딸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유방암이 발견되었다. 유방암 투병 중 그녀의 소망은 딸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사는 것이었다. 수술과 힘든 항암을 잘 견뎌내고 건강을 되찾았다. 지난 연말에는 UCSB에 한 학기 교환학생으로 와 있던 큰 딸을 보기 위해 미국에 와 우리 집에서 3주가량 머물다 갔다. 함께 미사도 가고 성탄절을 보냈다. 암을 다 이겨낸 것처럼 건강해 보였는데, 한국으로 돌아가고 얼마 후 췌장암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공무원인 남편의 근무지가 세종시라 몇 년 동안 주말 부부로 살다.. 2020. 7.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