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심부름을 가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날은 덥고 길은 멀어 보였다. 정숙이네 과수원을 지나자니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추리 나무 가지가 더위에 늘어져 팔을 올리면 손에 닿을 듯싶었다. 아이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얼른 하나 따서 입어 넣었다.
아삭하고 깨무니, 단물이 입가로 흐른다. 꿀을 발라 놓은 듯 달고, 꽃보다 진한 향기가 입안에 퍼진다. 다 먹기도 전에 두어 개를 더 딴다.
“너 현숙이지? 이리 와 봐.” 들켰구나.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정숙이 고모가 부른다.
“어디 심부름 가니? 덥겠다. 너 이 추리 좀 먹어 볼래?” 정숙이 고모가 나무에서 추리를 하나 따서 내민다. 아이는 아무 말없이 받아 든다. “우리 집에 나무에서 떨어진 것이 좀 있는데, 가지고 가서 동생하고 나눠 먹어.”
아이는 그녀가 건네주는 추리 봉투를 받아 들고 가던 걸음을 재촉한다. 그녀가 자신이 추리 서리를 하는 것을 보았음을 안다. 아이의 볼이 부끄러움에 빠알갛게 달아올라 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주말, 아침을 먹으며 아내가 들려준 이야기다. 정숙이는 아내의 고향 친구다. 그날 아이에게 추리를 한 아름 안겨주었던 정숙이 고모는 훗날 수녀님이 되었다고 한다.
정숙이 소식을 아느냐고 물어보니 지금은 모르지만 고향 친구들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나는 아내에게 언젠가 한국에 가서 잠시 머물게 되면 그 수녀님을 찾아가 보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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