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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당신의 이름은?

by 동쪽구름 2020. 7. 26.

나는 이름이 여러 개다. 호적상의 이름은 고동운 (高東雲)이며, 미국 시민권에는 Don Ko라는 이름을 쓰고, 수년 전에는 세례를 받으며 요한 (John)이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 외에도 동일이라는 이름과 David라는 이름을 사용한 적도 있다.

혹시 신분 도용이나 도피를 하기 위하여 여러 개의 이름을 가졌는가 하는 오해를 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절대 그런 이유는 아니다.

어렸을 때의 일이다. 나를 좋아하고 아끼던 이모가 점을 보았는데 '동운'이라는 이름 탓에 내가 소아마비에 걸렸으며 그 이름을 사용하면 결코 병을 고칠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동쪽 하늘에 구름이 끼었으니 팔자가 답답하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동쪽 하늘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생 '동호'는 나보다 훨씬 좋은 팔자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모가 작명가를 찾아가 받아온 이름이 '동일'이었다. 그 후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이모는 나는 동일이라고 불렀으며 '동일'이라는 이름의 도장까지 파 주었다.

'동운'을 영문으로 바꾸면 Dong Woon 이 되어야 하는데 호적을 영문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누군가 W 자를 U로 바꾸어 놓아 내 영문 이름은 Dong Uoon 이 되어 버렸다. 제대로 읽으면 '동윤' 이가 되는 셈이다.

미국에 온 직후 아버지가 가게를 새로 사서 자리 잡는 일을 도와드리게 되었다.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미국인 매니저 부부와 일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 왔으니 영어 이름이 하나 있어야겠다 싶어 부탁을 했더니, David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후 2년 이상 그 이름을 사용했었다. 한데 신분증의 이름과 다르다 보니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생겨났다. 수표를 받아도 은행에 입금을 하려면 장황한 설명이 필요하고 때로는 아예 입금이 되지 않았다.

83년에 공무원이 되며 슈퍼바이저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이름을 바꾸어야겠다고 했더니 호적상의 이름 Donguoon을 줄여 Don으로 쓰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래서 또 한 번 이름이 바뀌었다. 미국 사람들은 Donald라는 이름을 줄여서 Don이라고 쓰지만 내 이름 Don의 어원은 본명인 '동운'에서 나온 것이다.

수년 전 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며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받게 되었는데 성이 고씨니 '고요한'이 되었다. 요즘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또는 “고요한 내 가슴에 나비처럼 날아와서…”로 시작되는 노랫말과 함께 소개를 한다.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 외할머니는 박아지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사셨다. 읍에 나가는 이웃에게 박복순이라는 이름으로 아이 호적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막상 면사무소에 가니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아지'라고 했다나.

3살 때 미국에 온 큰 아이의 이름은 '세일'이다. 영어로는 'Seil'이라고 쓴다.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아이들이 'sale, ' 또는 'seal' (물개)라고 놀려대서 몇 번이나 울고 왔다. 3학년 때 전학을 가며 이름을 Scott으로 바꾸었다. 내가 지어 준 것이 아니고 본인이 선택한 이름이다. 

한국에서는 왜 아버지 쪽의 성만 따라야 하느냐며 부모 모두의 성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언더그라운드 가수 중에 강허달님이라는 가수가 있다. 부모님의 성인 강씨와 허씨를 모두 사용한 이름이다. 

동쪽으로 (東) 구름따라 (雲) 오다 보니 미국에 와서 살게 되었다. 그러니 이름과 팔자가 영 무관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듯싶다. 부디 남은 생은 구름처럼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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