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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사는 게 뭐라고

by 동쪽구름 2020. 7. 24.

‘사는 게 뭐라고’는 어르신 소리를 듣는 나이의 노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책이다. 저자 ‘사노 요코’는 전 세계에서 40여 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은 밀리언셀러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이 책은 2003년부터 2008년,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까지 쓴 꼼꼼한 생활 기록이다. 한 편의 소설 같기도 한 에세이집이다.

 

내 나이도 이제 그녀가 이 책을 쓰던 무렵과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그래서인지 거리낌 없는 문장과 화술에 시원함을 느낀다. 또한 과거 일본인들의 삶이 내 어린 시절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행기 연료로 쓰기 위해 소나무 뿌리를 캐던 그녀의 사촌언니는 어린 나이에도 이래 가지고는 결코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일왕이 패전은 알리는 방송을 들으며 더 이상 산에 가서 나무뿌리를 캐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신나 했다.

 

그녀의 오빠는 11살에 요즘 같으면 아무것도 아닌 감기로 죽었다. 영양실조 탓이었다고 한다. 전후 일본에는 식량이 부족해 수수죽도 먹고 보리밥과 고구마를 먹었다. 집에서는 멸치를 넣고 된장국을 끓였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칼슘이니 먹어야 한다며 식구 모두에게 두 마리씩 멸치를 나누어 주었다. 우리 집에서도 그랬다. 아버지는 된장국에 멸치를 넣어 끓이게 했고, 우리는 그 멸치를 먹어치워야 했다. 까칠하고 뻣뻣하며 맛없는 멸치를.

 

맛있는 것은 후딱 먹어치우는 그녀에게는 맛있는 것을 아끼며 먹는 동생이 있다. 동생이 한눈을 팔 때면 맛있는 반찬을 뺏어 먹고는 했는데, 한 번은 굴튀김인가를 집어 먹다가 걸려서 동생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만다. 머리가 뿌리째 뽑혀 머리에는 동전만 한 크기의 흉터가 생겼다.

 

나와 내 동생은 반대였다. 나는 맛있는 것을 조금씩 아껴 먹었고, 동생은 서둘러 먹었다. 꿩만두를 먹던 날, 먼저 그릇을 비운 동생이 내 입으로 향하던 마지막 만두를 날름 집어 먹었다. 나는 그의 머리를 뽑는 대신 울음보를 터트렸다.

 

아들의 친구가 전해준 ‘겨울연가’로 한국 드라마의 매력에 빠진 그녀는 근 1년 동안 한국 드라마 DVD를 사모으고 몇 번씩 돌려 본다. 같은 자세로 너무 오래 비디오를 보아 턱에 이상이 생기기도 한다. 한국에도 두 번이나 다녀갔다고 한다. 그녀는 중년의 일본 여성들이 한국 드라마에 빠지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줌마들은 외롭다. 할 일이 없다. 인생은 이제 내리막 길이다. 집에는 꾀죄죄한 아저씨가 늘어져 있다… 이제는 남편과 자기도 싫고, 섹스라면 지긋지긋하다… 귀찮고 성가시다. 하지만 사랑은 받고 싶다… 한국 드라마의 남자는 일본 남자라면 부끄러워할 만한 일들을 태연하고 당당하게 해 치운다.”

 

요즘 아내가 부쩍 드라마를 많이 본다. 혹시 나도 이제 꾀죄죄한 아저씨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가며 건망증이 심해지자 그녀는 혹시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해서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그녀는 암수술 직후에도 매일 담배를 피웠고, 의사로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는 덜컥 재규어 승용차를 사기도 한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을 거침없이 해대는 할머니다.

 

그녀는 페미니즘을 입에 올리지 않지만, 단연코 페미니즘의 선구자다. 다 읽고 나면, 사람 사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다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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