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접어든 분위기다. 코로나와 상관없이 계절은 돌아간다. 아내가 마당에 나가 감을 한 바가지 따 가지고 들어 온다. 물어 씻어 꼭지만 잘라내고 먹으면 달콤하니 먹을 만하다. 2년 만에 제대로 먹어보는 단감이다.
매년 소출이 줄더니, 작년에는 딱 3개가 달려 두 개는 다람쥐에게 빼앗기고, 달랑 한 개를 넷으로 잘라 조카 녀석들과 나누어 먹었다. 알고 보니 감은 새로 난 가지에만 열린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감을 내지 않는 나무만 탓하고 있었다. 지난봄, 아내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묵은 가지를 잘라내자, 눈에 띄게 커지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나왔다.
감이 제법 많이 달렸구나 했는데, 알고 보니 너무 많이 달려 있었다. 올망졸망 다닥다닥 열리다 보니 커지지 않았다. 갓난쟁이 주먹만 하다. 한 번에 3-4개는 먹어야 제대로 된 감 하나 먹은 꼴이다. 한 가지에 너무 많은 열매가 자라지 않도록 적당히 솎아 주어야 크고 실하게 자라는 것을, 달린 것을 모두 먹겠다는 욕심의 결과다.
아내는 매년 봄이면 텃밭을 가꾸는데, 같은 작물을 심어도 소출은 매년 다르다. 작년에는 호박이 엄청 열려 이집저집 나누어 주고 잘라서 말리기도 했는데, 금년에는 제대로 된 호박은 구경도 못했다. 대신 오이가 많이 열려, 여름내 오이를 먹고 장아찌도 담았다.
나무와 텃밭을 보며 사람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도 성장과정은 모두 다르다. 활달한 놈이 있는가 하면, 겁 많고 소극적인 놈도 있고, 책을 좋아하고 공부도 잘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공부와는 별로 친하지 않은 놈도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 삶에 만족하며 사는 놈이 있는가 하면, 불만과 욕심을 가지고 사는 놈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늘 같은 자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달이 차면 기울고, 낮이 지나면 밤이 되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음지와 양지가 오간다. 인생이라는 것이 누가 가르쳐 준다고 쉽게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60여 년 내 삶을 돌아보아도 그렇다. 결국은 겪어봐야 알게 된다.
감나무를 보며 과연 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였나를 생각해 본다. 자유와 관대라는 미명 아래 자르고 다듬어 주어야 할 나이에 무관심으로 방관하지는 없었나. 때로는 지나치게 간섭하고 늘 이래라저래라 아이의 삶을 좌지우지하지는 않았던가.
자녀를 키우는 일도 텃밭을 가꾸거나 나무를 키우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농부는 가지를 자르고 거름과 물을 줄 수 있지만, 잘 자라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나무가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다. 부모는 곁에서 지켜보며 응원을 해 줄 수 있을 뿐이다.
돌아보면 잘한 것보다는 잘못한 일들이 더 많다. 모두가 어른이 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에게 주었던 크고 작은 상처의 흔적들을 찾아 만져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가을이 지나고 나면 감나무는 잎을 떨구고 가지만 남을 것이며, 아내는 다시 전지가위를 들고 묵은 가지를 잘라낼 것이다. 내년에는 열매를 적당히 속아 주어 크고 실한 감을 먹게 되려나 모르겠다. 과연 욕심을 버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