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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침묵이 주는 평화

by 동쪽구름 2021. 3. 8.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을 보았다.

 

헤비메탈 그룹 ‘블랙 하몬’의 드러머 ‘루벤’ 은 밴드의 가수인 여자 친구 ‘루’와 함께 RV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며 공연을 한다. 헤로인 중독자인 그는 4년 전 약을 끊고 재활을 했으며, 루 역시 팔에 무수한 자해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갑자기 청력에 이상이 생기자 약국을 찾게 되고, 약사는 빨리 의사를 보라고 한다. 의사는 이제 그에게는 20-30% 정도의 청력 밖에 남지 않았으며 그마저 언제 잃게 될지 모르니 소음을 피하라고 한다. 인공 달팽이관이 유일한 치료지만 비용이 많이 들며 보험으로는 커버가 되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루벤은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공연을 계속한다.

 

어느 날 공연 중 소리가 들리지 않자 무대에서 급히 내려오고, 결국 루가 그의 상태를 알게 된다. 루벤은 공연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우기지만 루는 루벤을 약물중독에서 구해준 스폰서 ‘헥터’에게 전화를 한다. 그의 소개로 월남전에서 청력을 상실하고 청각장애인 시설을 운영하는 ‘조’를 찾아간다.

 

루벤은 루와 함께 있고 싶어 하지만, 시설에는 청각장애인만 있을 수 있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루는 떠나간다. 인공 달팽이관 수술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루벤은 처음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수화도 배우고 조금씩 적응해 나간다.

 

그는 가끔 조의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컴퓨터로 루의 근황을 살펴본다. 그녀는 파리에서 자신의 음악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루벤이 시설에 머무는 비용은 지역 교회가 스폰서를 하고 있었는데, 조는 그에게 시설의 직원으로 머물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루벤은 RV와 그 안에 있던 음향시설을 모두 팔아 수술비용을 마련하고 시설을 떠난다. 수술이 끝나면 금방 청력이 돌아오리라는 그의 믿음과 달리 의사는 4주 후에나 인공 달팽이관을 작동시킬 수 있다고 한다.

 

시설로 돌아온 그는 4주만 시설에 더 있게 해 달라고 조에게 부탁하지만, 조는 이를 거절한다. 이 시설은 청력상실은 장애가 아니라는 믿음 위에서 세워졌다고 말한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청력을 다시 찾으려는 사람들이 아니고,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고. 조는 청력상실로 찾아온 새로운 삶에서 아무런 희망과 즐거움을 찾지 못하고 과거의 삶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루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떠나보낸다.

 

고칠 수 없는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를 고쳐보려고 애쓰는 한, 마음의 평화는 없다. 보조기를 입고도 걸을 수 없었을 때, 나는 다시 걸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후 나의 소아마비를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는 돌팔이 의사들을 수없이 만났다. 그들은 6개월, 1년이면 걷게 할 수 있다고 장담했으며, 어린 나는 침과 뜸과 쓰디쓴 한약을 견디어야 했다. 치료의 고통보다는 기대와 실망의 반복이 더 힘들었다. 고칠 수 있다는 의사를 만나면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이 부풀어 오르고, 몇 달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을 때 찾아오는 절망감은 부풀었던 희망보다 몇 배나 깊은 나락이었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인정하던 순간, 나는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이제 걷는 일은 내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대로 행복하다.

 

4주 후, 인공 달팽이관을 작동하지만 들려오는 왜곡된 소리는 루벤이 기대했던 것이 아니다. 의사는 시간이 지나면 조금 익숙해지겠지만 과거에 듣던 소리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벨지움에 있는 루의 아버지 집으로 그녀를 찾아간다. 한눈에 그녀가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머리 모양이 바뀌었고, 팔에 있던 칼로 그은 자국들도 말끔히 지워졌다. 다음날 아침, 가방을 들고 거리로 나선 루벤은 벤치에 앉아 달팽이관에 소리를 전달하는 장치를 머리에서 떼어낸다. 마침내 찾아온 완벽한 침묵. 과연 그는 소리 없는 삶이 주는 평화를 찾았을까.

 

루벤 역의 ‘리즈 아메드’는 이 작품을 위해 6개월 동안 드럼을 배웠고, 수화도 배웠다. 4주 만에 촬영을 끝낼 수 있었을 정도로 모두가 몰입해서 만든 영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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