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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야기

어떻게 떠날 것인가

by 동쪽구름 2020. 11. 9.

선거가 끝나고 5일 만에 마침내 바이든이 미국 4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 선거에서는 개표가 완전하 끝나지 않아도 당락이 결정되면 패자가 승자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를 해주고, 단상에 올라 자신을 도와주었던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다음, 승자가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이들의 뜻도 잘 받아들여 화합의 정치를 하겠노라는 승리의 연설을 하게 된다.

 

어제는 축하전화도,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고 패배를 인정한다는 연설도 없었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부정선거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미국 시민권을 딴 후 30여 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대통령 선거 투표를 했다. 하지만 내가 뽑은 대통령이라는 느낌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절실했던 선거다. 

 

미국에 사는 대다수 한인들은 70-80년대 이민 온 사람들이다. 그 무렵 한국의 정서를 그대로 가지고 산다. 그래서 다소 보수적이며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 이번 대선에서도 과반수의 한인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트럼프가 좋아서라기보다 공화당이기 때문에 지지한 것이다. 

 

나 역시 동성애자 결혼, 낙태, 저소득층에 대한 과다한 지원 등의 이유 때문에 보수적인 공화당에 적을 두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미국을 이해하게 되고 공화당의 행적을 보며 오마바가 대선에 나올 때 당적을 민주당으로 바꾸었다. 그 후 계속 민주당 후보를 찍어왔다. 

 

지난 40년 사이,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것은 1992 부시와 이번에 트럼프가 유일하며 공교롭게도 둘 다 공화당 출신이다. 

 

얼마나 인물이 없으면 트럼프 같은 사람이 공화당 후보로 나왔겠는가. 물론 그 덕에 공화당은 백악관 탈환에 성공하긴 했다. 타성에 빠진 정치에 신물이 난 미국민들은 트럼프의 파격적인 언행에 빠져 들었다. 미국 중남부 백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전국 투표에서는 적은 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선에 필요한 대의원을 확보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그 후 그가 보여준 행보는 실망 그대로다. 미국의 위상을 높이기는커녕 나라를 둘로 갈라놓고 말았다. 정치는 장사가 아니다. 정치인은 눈앞의 이익보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대립보다는 양보와 화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만약 트럼프가 대선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단상에 올라,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며 바이든이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협조를 하겠노라고, 그동안 나름 열심히 했지만 부족한 점도 있었고 잘못한 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미국을 사랑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니 이해하고 용서해주기 바란다라고 했다면, 그를 반대했던 절반이 넘은 국민들로부터 따뜻한 박수를 받으며 백악관을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때가 되면 앙금을 남기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하던 이와 헤어지는 일이건, 직장이나 관직을 떠날 때도 그러하다. 죽음을 앞두고도 마찬가지다. 잘못 없이 세상을 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며 화해하는 것으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트럼프가 어떤 모습으로 백악관을 떠나는가에 따라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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