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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결코 말하지 않는 것들

by 동쪽구름 2026. 6. 9.

57세의 고등학교 역사 교사 ‘아티 댐’은 지역 사회와 학생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다. 30년을 함께한 아내 ‘이비’와 매사추세츠 주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해안 마을에 살며, 주말에는 취미로 돛단배를 타는 등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지독한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주변에 가족과 동료들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깊은 내면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못하는 단절감을 느낀다.
 
그의 가족에게는 10년 전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다. 아들 ‘롭’이 운전을 하던 중 교통사고를 냈고, 이 사고로 동승했던 그의 여자친구가 사망한 것이다. 아들이 말하지 않았지만, 아티는 사고 원인의 비밀을 알고 있다. 이후, 롭은 마음을 닫아버렸고, 아티와 아내 사이에도 말로 꺼내지 못하는 감정의 벽과 소외감이 생겨났다. 
 
어느 날, 아티는 바다에서 배를 타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아찔한 위기를 겪는다. 이 강렬한 사건을 계기로 삶의 감각을 잠시 회복하는 듯하지만, 더 큰일이 찾아온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롭이 아티에게 어머니와 관련된, 그동안 숨겨져 왔던 충격적인 비밀을 털어놓은 것이다. 이 비밀은 아티가 평생 믿어왔던 30년간의 결혼 생활, 아내에 대한 신뢰, 그리고 가족이라는 존재의 기반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다. 
 
이야기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전후의 혼란스러운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진행된다. 역사 교사인 그는 학교와 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갈등, 도덕적 붕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보며 깊은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그가 겪는 내면의 붕괴와 고독은 단순히 한 개인의 불행을 넘어,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파편화되어 가는 현대 미국사회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다. 
 
소설은 파국을 향해 치닫는 것처럼 보이지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늘 그렇듯이 아티와 그의 가족들은 진실과 수치심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풀어 나간다. 
 
소설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비밀들이 등장한다. 세상에 비밀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버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비밀이 있는가 하며, 말 못 하는 비밀, 말해버려 더 큰 비밀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요즘 유전자 검사 키트가 저렴하고 흔해 선물로 주고받기도 한다. 나의 조상은 어디서 왔는가를 알고 싶어 유전자 검사를 했다가 낳아준 부모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에도 출생의 비밀이 등장한다. 배우자의 불륜은 아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모르는 것이 좋은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생각인지. 나는 불륜이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면, 굳이 알고 싶지 않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 하지 않았나. 출생의 비밀은 조금 다르다고 한다.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에 가족력이나 부모의 병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The Things We Never Say'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발표한 신작이다. 그녀는 나와는 동년배이며 그녀의 책에는 늘 황혼기의 중, 장년들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책은 나와 내 친구들의 이야기 같다. 그녀의 소설에는 큰 서사나 반전 따위는 없다. 늘 잔잔히 물이 흐르듯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럼에도 그 흐름 속에서 인간이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