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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3월의 광란

by 동쪽구름 2021. 5. 16.

‘존 그리샴’의 36번째 소설 ‘술리’(Sooley)를 읽었다.

 

17살 고등학생인 ‘사무엘 술리만’은 아프리카 남수단의 청소년 농구단에 선발되어 난생처음 고향 마을을 떠나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방문하게 된다. 토너먼트에 참가하여 중요한 경기를 앞둔 시점, 고향 마을에서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진다. 반군이 마을에 쳐들어와 남자들을 모아 학살하고, 젊은 여성들은 옷을 벗겨 끌고 갔다.

 

사무엘의 아버지는 마을회관에서 학살당하고, 누이동생은 반군에게 끌려갔으며, 어머니가 어린 두 동생과 마을에서 도망을 나와 천신만고 끝에 이웃나라 우간다의 난민 수용소에 정착한다.

 

돌아갈 곳이 없어진 사무엘은 코치의 배려로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 농구팀에 들어가 미국에 남게 된다.  팀 동료 ‘머리’와 그 부모의 배려 속에 차츰 미국 생활에 자리를 잡아가고, 주변의 도움으로 난민 수용소의 어머니를 찾아 전화통화도 하게 된다.

 

미국에서 농구를 해 본 적이 없는 그는 첫해에는 시합에는 나가지 않고 '레드 셔츠'* 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팀이 부진하고 선수들의 부상으로 연패를 이어가자, 코치는 사무엘에게 출전의 기회를 준다. 시합에 나선 그는 기대 이상의 기량을 보여 주며 팀을 연승으로 이끌어 마침내 ‘3월의 광란’ 미 전국 대학농구 대회에 나가게 된다.

 

첫 경기를 1번 시드 팀과 만난 사무엘의 팀은 예상을 깨고 2회전에 진출하며 그의 활약으로 연승을 이어가 결국 4강전까지 오르게 된다. 대회 기간 동안 사무엘은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전국적인 스타가 된다. 대회가 끝나고 그는 대학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NBA 드래프트에 나갈 것인가를 선택하게 된다. 어머니와 동생을 미국에 데려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는 주저 없이 드래프트에 나가기로 한다.

 

유명한 스포츠 에이전트와 계약을 하고, 그의 도움으로 NBA 팀에 드래프트 되며 대박을 터트린다. 하지만 그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거기까지다. 에이전트의 집에서 벌어진 파티에서 술과 엑스터시를 섞어 먹은 그는 결국 약물중독으로 사망한다.

 

나는 그리샴의 팬이며 그가 쓴 소설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찾아 읽었다. 지난 수년 동안 발표한 그의 소설이 과거에 비해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책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고 여러 비평가들의 의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샴의 책이므로 5월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스포츠 잡지나 신문의 스포츠난에 실린 특집기사 정도의 수준이다. 플롯이나 스토리 전개도 긴장감 없이 밋밋하다. 농구 경기를 묘사하는데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그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야구를 소재로 한 ‘Calico Joe’와 미식축구를 다룬 ‘Playing for Pizza’와 ‘Bleachers’ 등이 있었다. 이 소설들은 탄탄한 스토리 구성으로 매우 재미있었다.

 

그리샴은 농구팬이며 실제로 고등학교 팀에서 선수로 뛰기도 했다. 작년 3월 코로나 팬데믹으로 미전국 대학농구 대회가 취소되자, 열리지 않은 대회를 대신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수년 전 잡지에서 읽었던 남수단에서 온 청소년 농구팀의 이야기와 버지니아 대학에서 활약했던 아프리카 출신 선수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기다리던 대회가 취소되자 재미로 이 책을 쓴 것이라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많은 팬을 가진 유명 소설가라면 좀 더 신경을 써서 책을 출판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레드 셔츠' 란 대학에서 운동을 하는 선수가 연습만 하고 시합에는 나가지 않으며 일 년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대학 선수는 4년 동안만 대학팀에서 운동을 할 수 있다. 아직 기량도 떨어지고 체력도 다 성장하지 않은 17-18세의 신입생이 주로 선택하는 옵션이다. 부상으로 1년을 쉴 때도 이 옵션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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