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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2

피프티 피플 정세랑의 장편소설 ‘피프티 피플’은 2016년 1월부터 5월까지 블로그에서 연재했던 작품들은 묶은 책이다.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가깝게 멀게 연결된 5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주게 하는 책이다. 50개의 장에는 병원 안팎의 사람들이 처한 어려움과 갑작스러운 사고, 그들의 힘든 삶과 고민들이 들어 있다. 마치 신문 사회면의 하단 기사 같기도 하고, 한 편의 영화에서 중간의 10-15분 분량만 잘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가 책상에 앉아 상상으로 쓴 것이 아니라, 자료를 모으고 취재와 자문을 구해 상세하고 구체적인 사실을 담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 보안요원, 이송 기사, 임상시험 책임자, 공중보건의 등이 등장하고 응급실, 정신과, 외과 등을 찾는 환자들의 사연.. 2022. 1. 11.
보건교사 안은영 내가 어렸을 때의 일이니 이제 50여 년이나 된 이야기다. 식구 중에 누군가 몸이 아프거나 집안에 나쁜 일이 생기면, 할머니는 김치와 콩나물을 넣고 구수한 죽을 끓여 그걸 집 주변 여기저기에 뿌리며 “잡귀야, 물러가라.” 고 했다. 배고픈 잡귀들에게 죽 한 그릇 주며 우리 곁을 떠나라고 구슬린 것이다. 어떤 때는 한지 위에 반죽한 쌀가루를 얹고 김을 올려 쪄내어 작은 크기의 백설기를 만들어 장독대에 가지고 가서는 연신 손을 비비며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고 주문을 외우기도 했다. 솥에 물을 데워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후 어딘가 다녀온 후에는, 빨간 물감으로 쓴 한자가 적힌 부적을 접어, 알게 또는 모르게 식구들 옷깃에 숨겨 넣기도 했다. 할머니가 부정한 기운의 잡귀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었던 방법들이.. 2021.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