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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4

너무 한낮의 연애 제목만 보면 달달할 것 같고 다소 에로틱한 연애소설 같지만, 수록된 작품들은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다. 누구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있을 것이다. 생각하면 부끄럽고, 남이 알게 될까 봐 두려운 일들 말이다. 다시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 기억하고 싶지 않아 묻어 두었던 일들, 남들이 알면 어쩌나 싶지만 나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자행했던 일들이 연상된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에는 그런 면들이 들어있다.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외톨이다. 나름 법과 질서를 지키고 원칙을 고수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남들과 거리가 생긴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사람들은 주변 환경에 따라 눈치를 보고 처신을 달리한다.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가던 길을 고집하다 손해를 .. 2022. 3. 15.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의 작품에서는 영어권 소설을 한글로 번역한 느낌을 받곤 한다. 기발한 소재, 톡톡 튀는 플롯이 재미를 더 한다. 큰 기대하지 않고 집어 들었던 작품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역시 그런 맥락에서 재미있었다. 로봇 - 여행사 여직원 김수경이 자칭 로봇이라는 남자와 잠시 나누는 사랑이야기다. 섹스 로봇이 곧 대중화될 조짐이 보이는 요즘, 재미있는 소재다. 여행 - 결혼을 앞둔 수진은 전에 사귀던 애인에게 반 강제로 납치되어 곤욕을 치른다. 여자들은 결혼을 앞두면 다소 흔들리는 모양이다. 곧 남의 여자가 될 애인을 한 번 더 안아본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악어 - 변성기를 맞으며 아름다운 목소리를 얻어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부르던 남자가 어느 날 홀연히 그 음성을 잃게 된다. 밀회 - 7년 동안.. 2022. 1. 29.
침이 고인다 김애란의 소설집 ‘침이 고인다’에는 70-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보고 듣거나 경험했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그런데 그녀는 80년 생이다. 아마도 이런 일들은 2000년대 초까지도 이어졌던 모양이다. 어떤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인 것도 있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난하고 척박하지만 지질하거나 구차하지는 않다. 초라하고 힘든 삶에도 나름 낭만과 재미가 있고, 내일에 대한 희망의 빛이 있다. 도도한 생활 –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집은 빚더미에 앉게 되고 화자는 언니가 세든 지하방으로 오게 된다. 장마에 지하방에는 빗물이 흘러들고, 동생은 일 나간 언니를 기다리며 빗물을 퍼낸다. 영화 ‘기생충’의 지하방을 연상하게 된다. 장마에 비가 오면 할머니는 부엌에 들어가 빗.. 2021. 2. 28.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에 실린 소설들의 공통점은 술이다. 주인공들은 모두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독특한 발상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소설이란 결국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WHO 가 2011년 발표한 국가별 알코올 섭취 순위를 보면 한국은 성인 한 명당 14.8리터로 188개 회원국 중 13위였다. 한국에서는 와인이나 맥주보다는 알코올 함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증류수 (소주)를 선호하며 증류수의 소비량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2017년 소주 판매량은 총 36억 병으로, 국민 1인당 70병의 소주를 마신 셈이다. 이곳 미국에서도 코로나 이전 한인타운의 국밥이나 족발집에서 점심시간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테이블이나 빈 국.. 2020.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