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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작 9월은 때늦은 폭염으로 시작되었다. 남가주 대부분의 도시가 최고기온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폭염의 끝에 시작된 산불로 하늘이 재와 연기로 덮여 며칠씩 제모습의 해를 볼 수 없다. 붉은 해와 붉으스름한 하늘이 마치 영화에 나오는 종말을 맞는 세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봄을 코로나로 시작해서, 거리두기로 여름을 보내고, 계절은 이제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기울어진 해는 긴 그림자를 만들고, 아내의 텃밭은 소출을 끝낸 채소들을 거두어 내어 휑하니 빈자리가 늘어가고 있다. 마당에는 감나무가 한그루 있다. 몇 년 전에는 제법 감이 많이 달려 이웃에 사는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는데, 금년에는 딱 6개가 달렸다. 그나마 여름을 지나며 다람쥐가 하나둘씩 따먹어 2개가 남았다. 잎사귀 사이에 숨어있어 다람쥐의 눈에 .. 2020. 9. 15.
요리의 달인 주 정부 공무원이 되어 처음 근무했던 사무실에 ‘Janet’이라는 백인 여성이 있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낯선 직장에 익숙해지기까지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가 한국인임을 안 그녀가 한국식 불고기 조리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한국식 구이를 좋아하는 그녀와 남편은 가끔 밸리의 ‘덕수장’에 (지금은 없어졌다) 가서 불고기를 구워 먹는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고추장 양념을 한 돼지 불고기가 맛있다고 했다. 나는 이제껏 한 번도 내 손으로 불고기를 만들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어려서 외할머니가 음식을 만드시는 것을 늘 보아 왔기 때문에 불고기 양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푸줏간에서 기계로 썰어 주는 고기를 사지 않았다. 늘 돼지의 삼겹살을 사다가 나무 도마 위에 올려놓고 부엌칼로 저며 양념.. 2020. 9. 14.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일 뿐이다 성당에서 영세를 받은 직후의 일이다. 나이 드신 자매님 한 분이 내게 오시더니 기도를 부탁하셨다. 아직 어린 자녀가 있는 딸이 유방암인데 상태가 심각하다고 했다. 새로 영세받은 사람에게는 기도의 힘이 있다며 딸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부탁하셨다. 그 무렵 나는 한 두 차례 영적인 체험도 한터이라 정말 그런가 하는 마음으로 딸을 위한 기도를 몇 차례 드렸다. 정작 내 기도가 효험이 있었는지는 확인해 보지 못했다. 만약 상태가 나빠졌으면 그분이 더 상심할 것 같아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난봄 그분이 돌아가셨으니 이제 확인할 길은 없어졌다. 외할머니는 식구가 아프거나 집안에 걱정거리가 생기면 달달한 백설기를 쪄서 냉수와 함께 소반에 올려 장독대로 갔다. 가끔은 북어가 오르기도 했다. 그 앞에서 고개를 .. 2020. 9. 12.
내장탕 난 소나 돼지의 내장을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에서는 내장을 많이 먹었다. 소의 간은 저며서 달걀을 씌워 전을 만들어 먹었다. 따뜻할 때 초간장을 찍어 먹어도 맛있지만, 식은 것을 그대로 먹어도 맛있다. 미국에 오니 ‘liver and onion’이라는 요리가 있었다. 얇게 저민 소 간에 밀가루를 묻혀 베이컨 기름에 양파와 함께 지진 요리다. 80-90년대만 해도 웬만한 식당의 메뉴에 들어 있었는데 요즘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소 간은 가격이 저렴해 전에는 자주 해 먹었는데, 언제부턴지 간을 먹고 나면 다음날 소변 색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성장 호르몬과 항생제 때문이 아닌가 싶어 먹지 않게 되었다. 외가에서는 겨울이면 곱창과 양, 사태를 넣고 끓인 곰국을 만들어 먹었다. 송송 썬 파를 듬뿍 넣고 소금.. 2020.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