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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완전한 행복

by 동쪽구름 2023. 3. 25.

요즘 한국문단은 온통 여성작가 투성이다. 책은 남자보다는 여자가, 그것도 젊은 여성들이 많이 사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녀들이 쓰는 책은 그들을 겨냥한 소재가 많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정유정’은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여성작가다. ‘완전한 행복’은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녀 특유의 독특한 소재, 치밀한 구성 등으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신유나’가 사랑했던 남자들이 하나씩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의 시점을 교차하며 전개되는데, 막상 신유나의 시점은 없다. 주인공을 빼고, 그 주변 인물을 통해 그녀는 존재한다. 유나의 딸 ‘지유,’ 그녀의 언니 ‘재인,’ 전남편 '준영,' 그리고 현재의 남편 ‘은호’가 등장한다. 

 

유나가 사람을 죽이는 이유는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라는 그녀의 생각 때문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며 받았던 버림과 상실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성인이 된 후에도 극단적인 자기애에 빠져 지낸다. 그리고 더 완벽한 행복을 지키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가 여기저기 심어 놓는 이야기의 씨앗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씨앗은 뒤로 가며 싹을 틔우고 잎을 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야기 초반에 유나가 돼지고기를 다져 오리밥을 만드는 장면이 바로 그런 씨앗이다. 은호의 아들이 죽었을 때도 독자는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다. 

 

범인도 알고, 그녀의 계획을 알면서도 독자가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과연 범인 어떻게 그 계획을 실천에 옮길 것이며, 그녀가 지목한 사람들은 어떻게 그 위기를 벗어날 것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작가 정유정은 이 작품에서도 기발한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으로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럼에도 반복해서 지유에게 나타나는 동강오리와 재인에게 들려오는 노래는 좀 거슬린다. 왜 남자들이 유나에게 빠져드는 가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도 다소 부족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내 눈에만 보이는 아주 작은 옥은 티에 불과하며, 정유정스러운, 그녀 다운 매우 재미있는 사이코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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